연합감리교 최초 아시안 감독 윌버 쵸이 103세로 소천

크리스찬투데이 | 기사입력 2022/01/23 [13:20]

연합감리교 최초 아시안 감독 윌버 쵸이 103세로 소천

크리스찬투데이 | 입력 : 2022/01/23 [13:20]

 

연합감리교 최초의 아시안 감독인 윌버 쵸이 감독이 지난 12월 28일 시애틀에서 10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반세기 전인 1972년, 윌버 쵸이 감독은 연합감리교회의 첫 번째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으로 피선되어 전국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쵸이 감독이 자신을 위한 길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있는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더 다양한 지도자들을 위해 문호를 활짝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또한 쵸이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서부 지역총회는 1972년 중국 이민자의 아들인 쵸이를 감독으로 선출했다. 그는 1984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8년간 북서태평양 연회(Pacific Northwest)와 4년간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California-Nevada)를 이끌었고, 은퇴하기 직전인  1983-84년에는 총감독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쵸이 감독이 은퇴하던 해에 최초의 일본계 감독이자 두 번째 아시안 감독으로 피선된 로이 사노(은퇴) 감독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쵸이 감독이 모든 사람에게 주를 아는 기쁨과 은총을 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메시지는 정말 전파력이 강했다.”

 

쵸이 감독은 수년에 걸친 그의 사역을 통해, 보다 민족과 인종이 다양하고 풍성한 교회로 이끌어냈다.

 

쵸이 감독이 섬겼던 북서태평양 연회를 포함하는 대북서지역(Greater Northwest Area) 연회의 감독인 일레인 스타노프스키는 총감독회의의 성명서에서, “쵸이 감독은 우리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을 환영하라는 성경의 인종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북서태평양 연회가 소수인종교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도 아래 다양한 인종과 민족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평신도와 목회자가 연회와 교단 내의 지도적인 위치에 올랐다.”라고 스타노프스키 감독은 말했다.

 

에젤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에게 감화받은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자메이카의 크리스천교회(Disciples of Christ)에서 성장한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이 북서태평양 연회를 이끌던 기간에 연합감리교회로 이적했다. 골드슨 목사는 이후 연회의 소수인종사역을 이끌다 은퇴했다.

 

“쵸이 감독은 친절함과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심각하지 않았고, 항상 설교로 우리를 웃게 했다.”라고 골드슨 목사는 말했다.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이 자신의 식탁에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훌륭한 요리사였다고 덧붙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쵸이 감독이 요리해준 맛있는 오징어 만찬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쵸이 감독의 첫 번째 파송은 감독으로 섬기다 은퇴한 후, 현재 시에라리온 연회에서 임시로 감독을 맡고 있는 워너 브라운을 지방 감리사로 임명한 것이다.

 

“쵸이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직분을 정직하게 감당했던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유행을 뒤따르는 데에 서두르지 않았다.”라고 워너 브라운 감독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장벽을 허무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우리가 핵심 가치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브라운 감독은 또한 쵸이 감독이 과거처럼 인재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윌버 왕 얀 쵸이는 수많은 사람이 출신 국가 때문에 차별을 당하던 시절인 1918년 5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서 중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불과 40년도 안 되는 1882년의 미국은 10년 동안 중국인의 이민을 중단하고 중국인의 귀화를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통과시켰고, 1924년 그가 6살이 되던 해에 미국은 아시아인 이민을 완전히 배제하는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자신이 살던 스탁턴에 소재한 중국인 감리교회에서 자란 후, 대학과 신학교를 다니던 1943년에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스톡턴 초급대학(Stockton Junior College)과 퍼시픽 대학(College of the Pacific)을 졸업한 후, 퍼시픽 신학교(Pacific School of Religion)에 진학하여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캘리포니아-태평양 연회와 남서부데저트(Desert Southwest) 연회를 주재하고 있는 하기야 감독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쵸이 감독은 항상 겸손하면서도 확고한 태도를 취했고, 은퇴한 감독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롤모델이기도 했다. 쵸이 감독에게 길고 풍요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쵸이 감독의 유가족으로는 39년간 함께한 아내와 네 명의 자녀 그리고 22명의 손자/녀와 증손자/녀 및 고손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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