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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크리스천 이것만은 알자[Ⅱ]
성경에 나오는 프레임 중 압권은 십자가 구속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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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7 [06:4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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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 프레임은 아무리 착하고 좋게 들려도 인본주의일 뿐”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어느 날 자신의 집 마당을 쓰는 하인이 세 시간 넘게 지각을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타고르는 해고해야겠다고 작정했다. 3시간 후 허겁지겁 달려 온 하인에게 빗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빗자루를 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딸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한다[사례1].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달리 해야 한다. 질문이 달라지면 답 또한 달라진다[사례2].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이러한 것을 사람들은 프레임(frame)의 법칙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이나 한국 사회에 때 아닌 프레임 전쟁이 일고 있다. 상황을 바라보는 눈들이야 제각각이지만 해석에 있어서는 크게 두개의 세력으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프레임의 원리, 그렇다면 작금의 시대에 광풍과 같이 거세게 불어 닥치는 프레임 전쟁에서 과연 크리스천들은 어떤 시각으로 프레임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지난호에 이어 후편을 토브포럼(Tov Forum) 대표 스테반 오 박사를 통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스테반 오 박사(Ph.D 물리학)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스탠포드선형가속기센터(SLAC) 등에서 연구했으며, 의료용 단층촬영 진단기구인 단광자방사선단층촬영(SPECT) 개발에 참여한바 있다. 현재 토브포럼(TOV Forum)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최근 한국에서의 프레임으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 사례가 있다면.

 

▷한국은 프레임 전쟁이 첨예할 전형적인 환경을 갖춘 나라입니다. 건국 역사가 짧은 것도 그렇고 건국 전부터 지금까지 좌우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해방과 건국 이후 6.25, 4.19, 5.16을 거쳐 오는 동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친일파 프레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분노를 이용해 대한민국을 일군 우파세력을 친일로 매도하고, 좌파를 항일세력으로 미화하는 프레임은 억지가 많습니다. 얼마 전 조국 임명 국회청문회 때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대한민국은 연좌제를 폐지했으니 조국 일가가 저지른 불법은 조국 후보자와 상관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식민 당시의 매국 친일파는 다 죽고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일인명사전도 매우 급진적인 좌파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는 ‘세상을 뒤집자’는 포스터가 붙어있었습니다. 당연히 공정성에 문제가 되었었지요. 위안부, 배상문제, 일제의 잔혹행위 등에도 프레임에 의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다행히 최근 이영훈 교수가 앞장서 집필한 <반일종족주의>가 출판되어 이 부분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이란 이름으로 제주 4.3사건, 5.18 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프레임 전쟁의 일환이고 효순·미선 사건, 광우병 파동도 다 ‘반미프레임’의 일환입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도 프레임입니다.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로 우파를 ‘보수’로 지칭하며 정착되었는데 용어가 주는 ‘이미지의 선호도’를 이용한 프레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우파와 좌파라는 잘 정의된 용어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배태(胚胎)한 최근 사례로는 ‘탄핵 프레임’을 들 수 있습니다. 권력은 권위에서 나옵니다. 권위 없는 공권력은 상상할 수 없지요. 탄핵프레임은 대통령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거짓보도를 기점으로 대통령이 독신여성인 점을 이용해 많은 추문이 나돌았습니다. 주입된 이미지가 프레임을 구성하며 권위가 무너져 선택의 우위를 차지할 조건이 마련되자 태블릿PC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조작된 프레임에 속은 국민은 탄핵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탄핵프레임에 속지는 않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프레임의 예를 찾아볼 수 있나.

 

▷성경이 창세기 처음과 계시록 끝 몇 장을 빼놓고 갈등(Conflict)으로 가득차 있듯이, 성경은 또한 프레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구속사 자체를 큰 의미에서 하나님이 설정하신 하나의 위대한 프레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둘은 같은 것을 보았지만 롯은 풍요를 인식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전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른 인식으로 이끈 프레임 차이의 결과는 창세기 19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프레임 전쟁이라는 제목을 보아 아마 의도는 ‘누명’ 이나 ‘혹세무민(惑世誣民)’ 측면에서의 프레임을 염두에 두신 듯합니다. 이런 종류의 프레임도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30장에는 야곱이 재산증식을 위해 외삼촌 라반을 속이는 프레임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씌운 프레임도 있고, 요셉이 양식을 얻으러 온 형제들을 정탐꾼으로  누명 씌우는 프레임도 있습니다.

 

반면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인이 만든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프레임도 있지요. 이 프레임에 의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울 때 다윗의 무예를 시기한 블레셋 지도자들은 다윗에 프레임을 씌워 함께 싸우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다윗이 동족의 피를 흘리지 않게 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성경에 나오는 프레임 중 압권은 십자가의 구속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민심이 예수에게 쏠리자 질투한 당시 지배층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신성모독과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 프레임’을 씌워 예수를 처형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이기심과 공포라는 죄성에서 비롯된 각종 프레임의 결과를 엮어 ‘구속사’를 만들어내십니다.

 

크리스천 입장에서 다양한 사회적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선도해 나갈 수 있다면 그 방법과 크리스천의 마음가짐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씀해 달라.

 

▷현대문명은 과학적 사고인 헬레니즘(Hellenism)과 기독교 사상인 헤브라이즘(Hebraism)의 양대 기둥으로 떠받쳐져 있기 때문에 역사, 문학,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에서 성경을 모르고는 그 심층까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문화가 아니지만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는 세속문화 따라가기에 바빠 대응할 뿐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맥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별사안에 매몰되다 보면 맥락을 놓치고 그만 상대방이 제시하는 프레임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명상’은 마음을 비워 세속을 떠나게 하지만, ‘묵상’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 세상으로 뛰어들게 한다”고 합니다.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 프레임은 아무리 착하고 좋게 들려도 인본주의일 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레임을 정서가 아닌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뇌는 감정적, 이성보다 정서를 자극하라”는 근거 없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입니다. 정서가 이끄는 판단은 속기가 매우 쉽습니다. 앞에서 ‘탄핵 프레임’에 속은 사람과 속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요.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정서에는 책임도 없습니다. 또한 ‘분노’는 자기감정만 해결할 뿐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제공하는 프레임에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기독교적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서는 그런 프레임을 제시하는 기술이 되겠습니다.

 

세상을 선도하려면 자연히 불이익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요즘 교계는 누리기만 할 뿐 희생에는 부족한 듯합니다. 불이익을 줄이려면 세상이 교계에 기대하는 그런 청결함을 갖추어야 하는데 교계는 이런 쪽에도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희생을 두려워하면 사명을 맡기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견해를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맥락, 말씀, 공의, 이성, 희생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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