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악머구리 울음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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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1 [08:2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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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어딘 가에 숨어 사는 맹꽁이 가족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가끔 달빛 어린 주차장에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벗어난 작은 개구리가 돌아다니나 보다 하였다. 조금 징그럽기도 한 놈이 수영장에 뛰어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 남을 세월을 보내고 나서는 어슬렁거리던 놈의 정체를 아주 잊고 살았다. 그리고 며칠 전, 구만리 하늘 저편의 알토란 멍울지던 저녁이야기를 꺼내 들고 나타났다.

 

끄르륵 쪼르륵 꽁알꽁알 꼬르륵생경스러운 기억이다! 무논이 쩍쩍 갈라지니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이웃 어르신들의 골 깊은 주름들이 섬광처럼 다가온다. 하늘만 바라는 산자락 천수답은 어쩔 수 없이 묵혀야 한다며 텁텁한 입맛을 쩝쩝 다셨다. 두런두런 가뭄처럼 타들어 가는마른 한숨 사이로 끄르륵 쪼르륵 꽁알꽁알 꼬르륵뒤란 채마 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낮 선 울음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천기라도 알아낸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그러면 그렇지 하늘이 그렇게 무심하실 리가 있나!”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내일은 비가 내리실 것이라며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 듯 잰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억수로 비가 내렸다.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 옹 알진 소리를 반기던 이들이 산 그림자처럼 주저앉아빌어먹을 악머구리 때문이다.”라고 이구동성 볼멘소리를 하였다.

 

홍수를 몰고 왔다는 음울한괴물?”의 이름을 그렇게 알았다. 그때부터 토란밭에 웅크리고 있을 놈이 달걀귀신보다도 더 무서웠다. 그야말로 물난리가 났었다. 이 집 논도 쓸어 엎고, 저 집 돼지도 끌고 가며 물구경하던 건넛마을 아이도 데리고 가버렸다. 잡을 지푸라기도 없을 땐 무엇이라도 붙들고 늘어져 원망하고 탓을 하여야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어제까지도 애타게 기다리며고이 내리실 것이라던 비는 하룻밤 사이 철천지원수 놈의 비가 되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는 형체도 모르는악머구리만큼이나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웅얼거림과 흔적들은 산 개구리를 삼킨 것처럼 오랫동안 더부룩하게 굼틀거렸었다. 그리고 이 세월의 여울목에서 난 다시 광기 어린 물결이 범람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빌라도의 법정에서바라바를 부르짖던 군중들을 떠올린다. 이것은 밟아버리고 저것은 뒤집어버리는 광야에서 벌쯤이 구경하던 자들의 영혼이 진흙탕에 휩쓸려간다.

 

국가는 국가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어제까지의 죽마고우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온 세상이 혼돈 속에서 동일한 몸살을 앓으며 휘청거리나 보다. 온난화 가속으로 빙하는 감소하는데, 아마존 밀림을 사르는 불길은 꺼질 줄을 모른다. 강자는 약자를 짓밟고 할퀴고 죽이고 탈취한다. 정죄의 돌을 든 자들은 사방으로 몰려다니며 토네이도를 모르는 나비처럼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광분을 다스리지 못한 심령들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절규처럼 쏟아진다. “소금기둥이 될 것 같아 귀를 틀어막아도 웅숭그린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애초부터 청군 백군으로 딱 편을 갈라놓고 시작한 운동회처럼 무조건 내 편이 이겨야 하는가 보다. 전쟁이 발발하고,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고, 세상 끝 날이 와도 진리를 외면한 채 물어뜯고 물어뜯기고 있을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쟁취하려는 것이 진정 누구를 위함인지 묻고 싶다.

 

뼈아픈 시절을 강인하게 건너와서 우왕좌왕하는 풍요로운 시대의 어른들은, 다음 세대의 주역들에게 과연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 주려는 것인지 궁금하다. 행여 빛바랜 우산처럼 여기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저만치 발자취를 밟고 오는 세대를 생각할 때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늘의 유업을 남겨 줄만 한 신앙인이었는지, 본받을 만한 부모였는지,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었는지 돌아볼 때마다 먹먹하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해갈되지 않던 내 목마름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았다. 차마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없고 성전으로 나아갈 수도 없어 가슴을 치던 세리의 심정, 메시아를 기다려야만 하였던 죄인의 갈망이었다. 언약의 구주는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찾아오셨고, 측량할 수 없는 대속의 은총으로 수치의 멍에를 벗겨 주셨다. 그 놀라운 은혜로 오늘도 영원을 유영하며 임이 임하실 동문을 열어놓고 참회의 나무 아래서 속 울음 울며 자비를 구한다.

 

인생을 굽어살피시는 주여!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영영토록 보호하소서. 비루함이 높아지고 악이 횡행하며 가난한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는 이때에 나로 사망의 잠을 자지 않게 하소서. 토란 밭 참개구리 울던 밤에 창수가 난 것처럼, 성령의 단비를 억수로 내리시어 탐욕도 죄악도 말갛게 씻기시고 흑 암에 앉은 자들도 참 빛을 보게 하소서!

희년의 나팔을 장엄하게 울리시어, 잃었던 자들이 돌아오고 무너진 것들을 다시 세우며 찢기고 상한 자리마다 새순이 돋아 생명 시냇가의 나무들처럼 푸르게 하소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면, 날마다 악머구리가 울어도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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