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⑱ 터기 최상명·이정미 선교사
음악치료+ 한국 문화 통한 선교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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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28 [09:3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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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푸른초장교회 평신도 선교사의 개척 이야기
 
▲ 최상명(오른편), 이정미 선교사 내외.   © 크리스찬투데이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던 이곳에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이 땅에 남겨두신 그루터키처럼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기독교에 관심 있었던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교회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해오고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 인구가 99.8%인 나라, 이들의 85%가 알라에게 기도하며, 22%가 하루 다섯 번 알라에게 기도하는 의무를 지키는 나라 터키.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땅의 면적이 크고 인구도 많아 ‘유럽의 중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급속히 노령화 되어가고 있는 반면, 터키는 젊은 노동력을 갖고 있으며, 최근 들어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전체적인 경제 수준은 중국을 조금 상회한다.
 
하지만 전체 인구 8천만 명 중 개신교인의 숫자는 고작 6천명에 불과하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개신교인이 터키 땅에 전무했다고 하니, 최근 50여 년간의 선교 결실이 6천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선교의 불모지와도 같은 터기에 교회 개척의 비전을 품고 아무 연고도 없는 터키 이스탄불에 무작정 날아든 선교사 부부가 있다. 최상명 · 이정미 선교사는 교회가 없는 곳에 예배자를 세우고,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기도를 실천하고자 현지의 교회를 꿈꾸며 지난 2009년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터키에 온지 2년째인 2011년 3월 아직 터키어도 익숙지 않은 채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무조건 터키어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어도 예배를 준비하고 그렇게 나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게 시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땅에 교회 개척을 위한 소망이 컸습니다….” 
 
“처음엔 저희 식구들만 참석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점점 이곳을 찾아오는 터키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터키어로 설교하며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그들의 보기에 어떻게 다가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터키 현지인뿐만 아니라 근처에 사는 중동에서 온 사람들도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시리아, 러시아, 이집트, 이란, 아르메니안, 미국인들까지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터키어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최상명 · 이정미 선교사가 지금과 같이 예배 공동체를 이루기까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슬람 국가이기에 모든 면에서 주의가 필요했다. 처음엔 신분을 분명히 밝힐 수 없어서 이름도 바꾸고 직업도 음악치료사라고 그들에게 설명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직도 그들에게 사역을 소개할 때면 조심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교회 장소를 구할 수 없어서 사무실을 얻고 예배를 드리다가 이웃집의 경찰 신고로 쫓겨난 일은 터키 선교의 시작에 불과했다.

▲ 최상명 선교사의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하고 있는 이스탄불 푸른초장교회 교인들.     © 크리스찬투데이

“지금은 합법적으로 한국문화협회센터라고 등록해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문화를 배우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대명제가 있지만 그것을 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밖에 간판도 달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한동안은 장소가 없어서 바닷가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새로운 장소를 얻어서 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느라 고심하며 지낸 날도 있습니다.”
 
“한번은 예배를 드리는데 처음 본 자매가 찬양을 부를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을 받았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자매는 우리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러 온 사람으로 서로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자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는 가족들에게 감금을 당하고, 핸드폰도 빼앗겨 연락이 두절되고, 최 선교사는 그 자매의 사촌오빠들한테 쫓기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남편을 해하고자 교회 근처까지 찾아왔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고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갔던 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라며 이정미 선교사는 그 때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현재 40여명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예배드리는 이스탄불 푸른초장교회, 지난주에는 에디르네에 교회가 개척되어 파송하는 교회로 발돋움했다고. 한국 사역자들 중심에서 이제는 그들 가운데 리더를 세우고 설교와 찬양을 맡기기도 하며 점점 현지인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감사한 소식이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예배에 참석하고 주일날 교제를 나눔으로 점점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주일만이 아닌 삶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도록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더 개척되는 것입니다. 이미 에디르네 교회가 개척되어 감사하지만, 아직도 교회가 없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땅의 부흥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목표는 앞으로 터키 현지인의 리더십 아래 독립·자립하여 또 다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지도자가 잘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잘 세워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 최상명 선교사는 명지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을 졸업했다. 음악치료사로 활동했으며, 예장통합 홍익교회에서 터키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터키 이스탄불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하고 현재 미주장신대 M.Div에 재학 중이다.

■이정미 선교사는 계명대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을 졸업했다. 상지원 음악출판사 피아노 학원 원장, 태국 방콕국제학교(BIS) 기숙사 MK 교사, 한동국제학교 기숙사 MK 교사 등으로 활동했다. 최상명 선교사와 함께 홍익교회에서 파송받고, 현재 미주장신대에서 M.Div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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