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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5) - 옛날 이스라엘 사람은 시간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당시 유대인의 시간 계수는 과학 아닌 관습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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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27 [06:1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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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시대 사람들의 시간과 거리 개념은 다소 경험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정밀한 기준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할 것이 아니다.     © 김동문 선교사

개인이 시계를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그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요? 수탉이 새벽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냈으니 배꼽시계가 있었을 것이니 문제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룻길, 사흘길 같은 거리는 어떤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었을까요? 예수 시대에 하룻길은 이동수단과 도로 형편, 계절, 여행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했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건강한 성인 남자가 하룻길을 갈 때 20-30킬로 정도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들도 그들의 일상을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리적 배경과 환경, 거리감을 고려하며 성경을 읽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같은 큰 도시의 경우는 성전에서 먼동이 크는 시간 즉 성전 업무가 시작됨을 양뿔 나팔을 불어서 알려줬습니다. 또한 로마군이 주둔한 지역에서는 로마 군영에서 먼동이 트는 시간을 마치 기상나팔을 불듯이 불었습니다. 규모가 있는 도시라면 야경꾼 같은 이의 시간 알림 역할도 이뤄졌습니다. 밤은 12시간이 아니라 대개 3시간씩 4경(watches)으로 나누었습니다. 저물 때, 밤중, 닭 울 때, 새벽 등입니다. 여기서 닭울 때는 삼경으로, 한 밤중과 먼동틀 무렵 그 사이의 시간을 뜻합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요 11:9)는 요한복음의 묘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모두 낮 시간을 12시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시간은 계절마다 달랐다. 해가 긴 여름과 짧은 겨울의 시간 개념이 달랐습니다. 요한복음 19:14의 6시는 봄철 6:00는 아직 어두운 시간대입니다. 날이 밝아오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은 밤의 끝과 낮의 시작의 경계에 있는 시간대입니다. 오늘은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성경 속 몇 가지 이야기를 짚어봅니다.

▲ 사마리아 그리심산에서 내려다 본 고대 세겜 지역과 수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산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방향이 요단골짜기 방향이다.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1. “...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 1:39)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하루를 함께 보냈다고 하는데 그 시각이 유대식으로 10시(오후 4시)라고 하면 시간이 너무 짧은 것 아닌가요? 로마식으로 여겨지는 오전 10시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가요?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밤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을 하루로 생각했습니다. 오후 5:00부터 오후 8:00까지 같이 지내도 2일을 같이 있는 것이 됩니다. 직접 상관이 없지만, 12월 31일 태어난 아기는 1월 1일이 되면 또 한 살을 먹습니다. 그 시대의 시간 계산 방법은 관습이지 과학이 아닙니다.

2.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 4:6)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온 시각이 유대식 6시(정오; 4:6)라고 하면 당시에 물을 길으러 오는 시간(오전 일찍 혹은 오후 늦게)과 잘 맞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유대지방의 요단강 지역에서 사마리아까지 가려면 3일 길 정도였습니다. 아침 6:00에 수가 여인이 우물에 도착할 때 예수님이 그곳에 왔다고 말하려면 예수님 일행이 밤 새 이동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전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3장부터 읽어 가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지방의 요단강 지역에서 세례를 주셨고, 거기를 떠나서 이동합니다. 유대지방의 요단강 지역에서 사마리아를 거쳐서 나사렛 가나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도시 지역을 통과할 때는 일반적으로 밤중 여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머물 곳을 찾아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먼동이 틀 때 발걸음을 내딛고 해지기 전에 멈추는 식이었습니다. (성경 속 대부분의 여정이 이렇게 펼쳐집니다.)

▲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가파른 벼랑을 끼고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멀리 보이는 평지 도시가 여리고 지역이다.     © 김동문 선교사

3.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4:52) 갈릴리 가나에서 왕의 신하가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하여 예수가 고쳐준 시간이 “어제 7시”(4:52)라고 합니다. 이것이 유대식이면 오후 1시가 되어,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그 날에 가다가 왕의 신하와 종이 만날 수 있는 거리입니다.(20-25 마일의 거리), 그렇다면 여기서 “어제 7시”라는 말이 잘 맞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오후 7시라고 하면, 밤길을 걷다가 잠시 쉬고 가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가나와 가버나움은 이틀길입니다. 지리적으로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숫가에 해발 -200미터 지점에 자리합니다. 가나는 해발고도 300미터 정도 지점에 자리한 언덕 마을입니다. 그 실마리는 '내려가는 길'(요 4:51)이라는 표현입니다. 가나에서 갈릴리 가버나움 등으로 내려가는 길은 첨부한 고도표지가 담긴 지도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로 올라온 왕의 신하와 예수님은 낮 시간에 만난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예수의 일행이 가나에서 하룻길 가서 머물고 그 다음날 출발했겠지요. 마찬가지 맥락으로 먼저 가나를 출발한 왕의 신하가 하룻길을 가고, 그 곳을 떠나 둘째 날 이동하여 갈릴리 호수가 가까운 쪽에 도착했을 무렵에 가버나움 집을 출발한 종들을 만났겠지요. 가버나움과 가나에서 출발한 이들이 가각 어느 정도 지점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아르벨산에서 내려다보는 갈릴리 호수 서쪽 풍경이다. 호수를 따라 막달라, 게네사렛, 가버나움이 이어진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도시 생활을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면, 마치 수 십 년 전 농촌의 시간 개념 비슷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정밀한 해시계가 아니라 해의 위치에 따라 추정하는 시간대로 말입니다. 낮 시간이 12시간으로 구분했지만, 이런 정밀한 시간 관리가 필요했던 것은 성전 제사나 로마의 공공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일반 서민은 이런 정밀한 시간 관리나 활용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장소 이름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기보다는, 성경 지도를 곁에 두고 그 길과 거리, 높고 낮음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성경 사건은 하얀 백지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거리, 공간을 떠올리며 성경을 읽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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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시간이 유대시간으로 기록되었다고? seobible 18/12/29 [11:19] 수정 삭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달리 로마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 기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막 14:25에 예수님이 못박히신 시간이 제3시인데, 요 19:14에 빌라도가 재판하는 시간이 제 6시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의 시간은 로마시로 보아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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