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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17)-광야 동굴에서 예수님의 탄생 구유를
서민들에게 광야 동굴은 집이자 구유, 무덤이었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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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5 [02:0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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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 산지 헤브론 가까운 유대 광야 지역의 마온 광야 동굴에 한 유목민 가족이 살고 있다.     © 김동문 선교사

‘이민자의 삶’, ‘타향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감회에 빠져드는지요? 저마다 다른 느낌이 차오르는 것은 그 경험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전에 담겨 있는 뜻으로만 우리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예수 시대 서민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구약 시대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궁금함을 갖곤 했습니다. 성경의 무대였던 요르단과 이집트에 머무는 기회를 누리면서, 그 궁금함을 조금씩 풀 기회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성안의 백성과 부자, 권력자들이 아닌 백성들의 삶의 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터키 할 것 없이 성경의 무대였던 땅을 방문하면 고대 유적지 석회암 동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도, 세례 요한의 고향으로 알려진 엔 케렘 유적도, 예수님의 마을로 알려진 나사렛도 동굴 속에서 그 옛날의 생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르단 남쪽의 페트라 주변 전동 마을이나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대 에돔 왕국은 대표적인 동굴 문명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도 20세기 초에도 예루살렘 근교에도 수많은 이들이 동굴 거주를 했다는 연구 결과도 봅니다. 그런데 동굴 거주 문명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동굴에 거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굴 집도 동굴이 아니라 ‘집’으로 불렀습니다. 사실 히브리어에서 두 번째 글자인 ‘베트’가 나타내는 것도 동굴 집을 그리고 있습니다. 들에서 목축을 업으로 하던 어떤 유목민들이 살던 천막도 집이었고, 성안의 우리가 떠올리는 식의 돌이나 흙을 이용하여 벽을 둘러서 만든 건물도 집이었습니다. 오늘날 저희가 ‘집’이라고 쓰면서 각 사람이 떠올리는 집은 다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동굴을 집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동굴을 원시인들이 수렵 생활을 하면서 살던 공간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서민들에게 집이 동굴이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 유대 산지 헤브론 지역 마온 광야(성경은 마온 황무지로 부른다) 살고 있는 유목민 동굴 집 곁에 양떼의 우리가 있다.     © 김동문 선교사

구유 그리고 집 
 
오늘날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지역은 석회암 산지가 많습니다. 그 지역에는 자연 동굴도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동굴을 자연 상태로 그대로 활용하거나 다듬은 형태로 주거 문명과 생활 문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삶의 모습은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서부터 여리고, 베들레헴 주변과 헤브론 주변의 유대 광야 지역 가릴 것 없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동굴은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양이나 염소의 구유와 가난한 목자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인조천이 없던 그 시절에 염소 털로 짠 천막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계산하기가 적절하지 않지만, 소박한 집 한 채 값이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형편이 안 되었던 서민들은 자연동굴을 적절하게 보금자리로 사용하고, 구유로도 사용했습니다. 또한, 무덤으로도 사용한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동굴을 무덤으로 사용하는 이야기는 창세기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 치르는 것에서 부터 등장합니다. 나사로의 무덤도, 예수님의 무덤도 동굴 무덤이었습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더 다듬고 안 다듬고의 차이가 있기는 했습니다. 요즘도 종종 유대 광야 등의 동굴 주거지를 방문해봅니다. 추운 겨울에도 따스한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창세기 23:19)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경제활동 양식으로서의 농업, 목축업, 상업과 주거 방식으로서의 도시 거주, 동굴 거주, 천막 거주는 독립적인 것입니다. 고온 건조한 여름, 저온 다습한 겨울 날씨를 가진 고대 이스라엘 지역의 경우, 동굴은 낮에는 시원하고 밤에는 따스한 공간입니다. 그 동굴은 동물과 사람이 같이 섞여 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물의 수가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사방이 열려있는 울타리만 쳐진 양의 우리보다는 안전한 공간이었습니다. 

▲ 사마리아 산지와 요단 계곡이 만나는 지역에 자리한 유목민이 동굴 구유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다.     © 김동문 선교사

구유 그리고 예수의 나심 
 
예수 시대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 시대를 멀지 않은 과거로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예수 시대는 물론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모두가 멀쩡한 가옥 구조를 갖춘 집에서 산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게다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들 모두가 집안에 화장실에 딸린 집에 살았던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국의 30년 전 50년 전 움집, 다리 밑 임시 건물, 달동네, 초가 등 다양한 곳에 살던 서민들이 많았습니다. 그 옛날의 평범한 백성들은, 저희는 지난 시절의 어려웠던 삶보다 더 낫지 못했습니다. 
 
예수 시대를 살던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특정인의 삶을 규정하는 그림 언어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구유입니다. 구유는 동물, 양이나 염소 집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민들 다수가 사는 집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가난한 서민들은 있는 자들로부터 우리말의 개돼지에 해당하는 양이나 염소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유에 태어난 아기는 그야말로 날 때부터 별 볼 일 없는 존재, 즉 양과 염소 같은 존재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접하던 이들은 그야말로 예수님에 대해 기대를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의 성육신의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누가복음 2:12)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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