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 이상 해마다 8월의 마지막 주일이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집 뒤 뜰에 있는 대추나무에서 많은 대추가 열려 잘 익은 대추를 수확해 교회에 가지고 가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기쁨을 나누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다람쥐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0여 년 전 어느 모임에서 친구 목사님을 통하여 인천의 장원모 목사님이 집 주시길 위하여 기도한 대로 받으셨다는 간증을 듣고 나에게도 그런 은혜와 기적의 축복 주시길 2년 동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한대로 집을 허락하셔서 이사할 때 교회 권사님 한 분이 대추나무를 이사기념으로 선물해 주셨습니다.
다람쥐가 수십 년 동안 뜰을 오갔지만, 올해처럼 대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앞 정원에 못난이 복숭아 두 그루를 심고 나서 올해 늦은 봄에 열매가 맺기 시작하자 다람쥐가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복숭아가 익기도 전에 먹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런 행동이 신기해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한두 번 그러다가 그치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번 맛을 들인 복숭아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방문해서 먹는 겁니다. 그때부터 다람쥐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소리를 내어 쫓아 보냈습니다. 다람쥐가 오는 시간이 되면 복숭아나무 가에 서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복숭아 맛을 안 다람쥐는 그것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8월 초부터 대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익기도 전인 설익은 대추 중 실한 것을 택하여 먹기 시작하는데 그런 다람쥐가 미운 것은 자신이 딴 대추를 다 먹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1/3. 혹은 1/4만 먹고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다람쥐가 먹다 버린 상처가 난 대추를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추만 도적 맞는 것이 아니라 이 대추를 수확하는 추수의 기쁨, 대추를 선물 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의 행복까지 탈취당하는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대추나무를 보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왕성하던 나무가 겨울이면 잎이 다 떨어져 마치 죽은 것 같이 되었다가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반복해서 마른 가지에서 작은 생명의 싹이 나와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신비로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한 번도 질서에 반하거나 역행하지 아니하고 정해진 절기와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말 못 하는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므로 사람에게 기쁨과 만족 유익을 주는 것처럼, 만물의 영장인 우리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자신과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으로 지난 1년 동안 언제나 그랬듯이 올해에도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선사할 것을 기대하고 반복해서 나무를 관리하고 수고한 희생한 대가를 다람쥐 때문에 얻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뜰에서 뛰노는 다람쥐가 이제는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피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상기목사(평강교회원로, CA) <저작권자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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