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 서부에서는 히피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 히피들은 기성 사회 질서, 통념과 제도를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 행동을 즐겼다. 히피 문화는 당시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존. F 케네디 암살, 마틴 루터 킹 암살 등 미국 사회는 암울한 소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 청년층은 이런 사회 현상에 혐오를 느끼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내며 기존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옷차림, 생각, 행동 등이 당시 기성세대와 너무 달랐고 약물, 컬트 등 자신들의 사상을 만들어 쫓는 이도 적지 않았다.
60년대 후반 히피를 보는 당시 기성세대의 시각은 상당히 불편했다. 특히 보수주의적 교회에서는 더욱더 그랬다. 특히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히피 청년을 보면서 기독교에 대한 희망이 더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히피는 당시 미국 기독교 부흥의 불씨를 지핀 제물이 되었다.
70년대 초 예수 운동을 일으킨 코스타메사 갈보리 채플 척 스미스 목사는 바로 이들 히피에서 가능성을 봤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히피를 달가워 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기성 목회자로 당시 청년들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가 로니 프리스비를 만나 히피에 대해 이해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언어를 습득했을 때. 척 스미스 목사는 당시 청년 세대야 말로 가장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뉴포트 비치 인근 코로나 델 마 해적 코브에서 기적적인 바다 침례식을 시작한다. 예수 운동의 기폭제이자 히피들이 진리를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갈보리 채플은 미 전역으로 뻗어 나갔고, 그 과정에서 그렉 로리라는 또 하나의 지도자를 낳게 된다. 그 역시 히피였고 척 스미스 목사를 만나 오늘날 메가처치가 된 리버사이드 하베스트 처치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예수 전함은 그렉 로리 하베스트 크루세이더라는 이름으로 매년 같은 장소에서 수 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고 바다에서 침례를 하기 위해 모인다.
이 이야기는 기억도 가물가물 한 몇 세기 전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도 살아있는 어르신들의 청년 시절 이야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지금 60대 이상은 소위 MZ 세대를 보며 혀를 찬다. 그리고 60년대 당시 청년이었던 본인들에게 기성 세대가 말한 것과 똑같이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고 비난을 한다. 하지만 MZ 세대 역시 당시 히피처럼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갈급하고 원하는 세대라는 것이 지난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시작된 자발적 워십을 통해 발견됐다. MZ 세대는 지금까지 그 어떤 세대보다 더 강력한 무기인 ‘뉴 미디어’를 통한 전파력을 가진 세대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무기력하고, 교회 나오길 거부하는 MZ 세대를 보는 교회 지도자들의 반응 역시 70년대 히피를 보는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히피가 70년 이후 예수 운동, 예수 혁명을 일으켰던 것처럼, 지금 MZ 세대에게도 그런 힘과 열정, 그리고 진리를 향한 갈급함이 있다. 어쩌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확신도 든다. 기성 교회와 목회자는 그들의 언어, 생각을 그들의 눈높이로 읽어야 한다. 척 스미스 목사는 히피들이 맨발로 다녀 교회 카펫이 더러워진다는 성도들의 불만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예배하러 오는 히피들의 발을 교회 입구에서 닦아주었다. 그런 행동은 히피의 언어를 이해하게 했고, 공감을 샀다.
MZ 세대가 중요하다 외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언어, 그들의 생각, 발을 씻겨줄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특히 미주 한인교회는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경직된 듯 보인다. 지난 애즈베리 리바이벌에서 보았듯 미국 교회의 대부흥은 이제 히피에서 MZ로 이어진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무릎 꿇고 발을 씻겨줄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지도자가 나타나 제2의 예수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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