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가 고 황광은 목사님의 딸입니다

김정호 목사 | 기사입력 2023/02/22 [07:38]

제 아내가 고 황광은 목사님의 딸입니다

김정호 목사 | 입력 : 2023/02/22 [07:38]

▲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NY)     

저와 아내는 오늘 서울 영암장로교회에서 열리는 ‘고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 보이스카웃 연맹과 서울 YMCA 등이 후원을 하고 영암교회가 주관을 합니다. 52년 전에 떠나셨는데, 영암교회는 이번에도 고인을 기리는 책을 두 권 출판하였고 예배와 추모행사를 지극정성으로 기획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30주기 때 김창걸 장로님(전 숭실재단 이사장)께서 “사람들은 30년 전 떠난 목사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왜 이리 성대하게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한국교회가 황목사님과 같은 목사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아서 도전받기를 바래서 입니다” 하셨습니다. 당시에 한태동 교수님은 추모사를 하러 나오셨다가 고개 숙이고 우시다가 들어가셨고 김준곤 목사님도 그리하셨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이 쓰신 ‘100년을 살아보니’에 황광은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번 행사에 연로하셔서 영상으로만 회고사를 하십니다.

 

난지도에 전쟁 고아들과 넝마 청소년들을 모아 ‘보이스타운’을 만드셔서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꿈을 키우셨습니다. 밤이면 부모 생각에 우는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를 불어주며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한다”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황목사님 장례예배 때 김활란박사님이 사회를 보시고 한경직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예배 중간에 고아들과 넝마들이 몰려와서 “우리 형님의 장례를 우리가 치러야 하는데 왜 당신들만 하는거냐?”고 항의를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4.19혁명 때는 대광 학생들이 흥분해서 데모하러 나가는 것을 “얘들아! 꼭 너희들이 나가야 한다고 결심했으면 기도하고 나가라!” 하시고는 부정부패는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고 피는 어린 학생들이 흘려야 하는 비통한 현실 앞에서 피를 토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모두 울었고 황목사님은 학생들에게 “가거라! 조국을 위해!” 외쳤고 학생들 앞에 대광 교직원들이 앞장 섰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생전 장인어른을 뵌 적이 없지만 사위라는 것 때문에 과분한 대접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래전 이승종 목사님이 저를 만나러 왔다가 밖에 최초 한국인 중국선교사 방지일 목사님이 계셔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따라 나가서 창문 밖에서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가던 차가 다시 오더니 당시 100세 가까이 되셨던 방목사님이 차에서 내려서 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면서 “황목사님의 사위라고 하셔서 꼭 인사하고 싶었어요”하셨습니다. 저는 성자와 같으신 방목사님이 어린 제게 그렇게 인사하시는데 몸둘 바를 몰랐었습니다. 제가 누린 특혜가 있었다면 황목사님 사위라는 것 때문에 시대의 큰 어른들이 저를 만나 주시고 손을 잡아주신 것입니다.

1981년 1월 결혼을 할 때 장모님은 제게 결혼 선물로 세탁소에서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양복을 수선해서 주셨습니다. 돈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목회를 하면서 보니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해도 황광은 목사의 사위라는 것이 나같이 빽이 없었던 무지랭이 에게는 큰 힘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 주일 예배 후 교인들 중에 왜 제가 한국 그 모임에 가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셨다고 해서입니다. 제 아내에게도 “사모님도 같이 가세요?”라고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제 아내가 황광은 목사님 딸이고 그러니 제가 사위가 됩니다. 사실 결혼 할 때도 그랬고 결혼 후도 기분이 좀 안 좋았습니다. 내 아버지도 목사였는데 항상 황목사님 사위로만 소개를 받고 내 할아버지도 평양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아내 외할아버지가 평양 장대현교회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아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관계되는 것으로 소개되는 것이 자존심 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인간 황광은’ 책을 읽고 생전 뵌 적 없지만 그 분과 내가 관계가 되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고 동시에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황목사님 묘비에 쓰인 글입니다. “황광은 목사는 맑고 너그럽고 착하셨다. 그의 생애는 짧으나, 하신 일은 크고 고우시다. 그는 고아의 참 벗이었고, 불우 소년의 길잡이였다. 이름 높은 아동 작가였고, 훌륭한 설교가이었다. 아! 황광은 목사 사랑과 청빈과 경건의 사람, 한국 기독교계의 화해의 사도, 그러나 그의 삶은 너무나 짧으셨다.”

 

황광은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대 목회자들이 저를 포함해서 도전받아야 할 어른이시라 이렇게 썼습니다. 저와 아내는 내일 라오스에 가서 평화선교사로 ‘고난모임’에서 파송한 이관택 선교사를 만나 선교지 방문을 하고 금요일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담임,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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