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바실레아 슐링크, 바실레아 슐링크처럼(국민북스, 2019)

배안호 선교사 | 기사입력 2022/02/25 [04:20]

서평 - 바실레아 슐링크, 바실레아 슐링크처럼(국민북스, 2019)

배안호 선교사 | 입력 : 2022/02/25 [04:20]

▲ 바실레아 슐링크, 바실레아 슐링크처럼(국민북스, 2019)

들어가기(서론): 국민북스 '한 달 묵상 시리즈2'

 

부제: '예'와 '아멘'의 사람 바실에아 슐링크와 함께하는 한 달.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회개하며 겸손히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 '아,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저에게 “예”와 “아멘”이십니다!'(책표지의 글)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는 책의 겉표지의 사진을 보면서 '이 분은 가톨릭의 수녀인가?',  '독일교회 여성들의 기도공동체 이야기인가?' 이러한 선입견(先入見)을 갖을 것같다. 그래서 '이런 책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을까?' 기대감 없이...

 

바실레아 슐링크(M. Basilea Schlink, 1904-2001)는 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예와 아멘'으로 응답한 순종의 사람이다. 슐링크는 1904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다. 18세에 구원의 체험을 한 이후 이 땅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는 삶을 추구했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약속의 성취만을 위해 진력(盡力)했던 참 그리스도인이다. 1939년 함부르크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47년 믿음의 동역자 에리카 마다우스(Erika Madauss)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큰 진통과 풍랑속에서 철저한 회개와 기도를 통해 독일 다륨슈타트에 개신교 회개공동체인 기독교마리아자매회(Evangelcial Sisterhood of Mary)를 창설했다.

 

바실레아 슐링크는 세계대전시대에 선지자적인 경고/복음전파사역/문서사역/방송선교/문화사역/믿음의 공동체(중보기도)사역/이스라엘선교사역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전했다. 그가 평생 저술한 100권의 책은 현재 약 6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기독교마리아자매회에는 19개국에서 온 자매들이 믿음의 삶을 살고 있고 이스라엘 등 12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국민북스의 '한 달묵상 시리즈2'이다. <조지 뮬러처럼> '한 달 동안만이라도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살아보자'는 뜻으로 출판된 작은 묵상책이다. 

 

지난 주에 소개한 조지 뮬러 보다 100년 후에 태어난 바실레아 슐링크는 모두 독일 출생으로 장수의 복을 누렸다. 서평자는 이 두 기도의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단순하고 순전한 사람, 심령이 깨끗하며 심지가 견고한 사람, 말씀에 붙들린 기도의 사람으로서 우리 모든 크리스천에게 멋진 신앙과 인생의 탁월한 믿음의 선배들이다.

 

본서의 묵상 중에서 '갈라진 틈에 서는 자가 되라'(Day 1), '거룩한 남은 자가 되라'(Day 2), '모리아의 경험을 하라'(Day 3), '어떤 댓가를 치르드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라'(Day 16) [책속의 책] '바실레아 슐링크, 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하고자 한다.

 

  1. 갈라진 틈을 서는 자가 되라(Day 1)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10) 

 

“지금 시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연합과 일치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세상에 분열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도 분열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금 주님의 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것은 비단 한 국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p. 14)

 

진정한 연합과 일치는 신학적 토론, 문서화된 교리가 아닌 무너진 데를 막어서는 사람이...

 

“진정한 일치는 오직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겔22:30) 모든 견해의 차이를 뛰어넘어 이 땅에서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어야 일치가 가능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화평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와 같이 갈라진 틈에 서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무너진 성이 새롭게 건축됩니다” (p. 15)

 

연합보다도 분열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기독교 진영의 모습...어제도 오늘도 동일! 

 

“모든 의견 충돌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관점과 견해에 매달리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경향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다툼과 헐뜯음, 그리고 모든 가식과 분열이 자라는 곳입니다. 부패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죽이고 사랑과 화해의 성령으로 새 생명을 얻어야 일치가 이뤄집니다. 우리의 타락한 지성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서 사랑이 승리의 개가를 드높일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끼리 하나가 되는 길을 찾아냅니다.” (p. 16)

 

--> 희한하게도 사랑과 진리를 생명처럼 강조하는 교회내의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다. 그러면 진정한 연합과 일치는 가능할것인가? 그 답은 우리의 타락한 지성이 사라지고 갈라지고 무너진 틈을 두발로 막아서는 중보기도자가 견고히 설 때에 가능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오늘 이 땅에 화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모든 갈라진 틈에 서서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런 당신을 보며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p. 17)

 

 2. 거룩한 남은 자가 되라(Day 2)

 

“시온에 남아 있는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사야 4:3)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대부분이 멸망하게 되리라고 심판을 경고하실 때마다 성경에 함께 등장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은 자'라는 단어입니다. “거룩하며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을 남은 자들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p. 18) 

 

'거룩한 남은 자'란 이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혹은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리실때마다 항상 거룩한 남은 자들을 남겨두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홍수 시대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소돔에 심판을 내리실 때에는 롯을 남겨 두셨습니다. 또한 주위를 돌아보아 어떤한 의인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패역한 세대에서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p. 18) 

 

--> 서평자는 이런 답답한 코로나 시대에 '거룩한 남은 자'를 참으로 많이 생각한다. 참으로 온갖 유혹과 핍박 환란중에도 우직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은자는 너무나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때마다 '그루터기', '남은 자'란 단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유구한 교회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던 시기마다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운 영적갱신과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무시무시한 재난이 지나간 후에는 어김없이 거룩한 남은 자들을 통해 뭔가가 새롭게 시작됐습니다... 거룩한 남은 자란 영적으로 강건한 자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견고한 기둥과 같습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 환란속에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p.19)

 

“이 패역한 시대에 거룩한 남은 자가 되기를 소망합시다. 최후승리 거둘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다해 나갑시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 그 경주를 시작합시다. “당신은 이 시대의 거룩한 남은 자입니까?” 이것이 오늘 당신이 답해야 할 결정적 질문입니다”. (p.20)

 

 3. 모리아의 경험을 하라(Day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2) 

 

“크리스천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는 회심할때도, 희생을 치를때도, 연단을 받을 때도 아닙니다. 바로 모리아의 경험을 할 때입니다”. (p. 22)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준 극심한 어둠의 순간에 하나님께선 사랑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깊은 절망의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여전히 신뢰한다는 표시로 나는 종종 기도하는 장소에 조약돌로 '예, 아멘'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오 주여!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때에도 당신은 영원히 '예와 아멘'이십니다.” (p. 23) 

 

“하나님 나라에서 통용되는 영적원칙이 있습니다. 치러야 하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열매는 더욱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일하는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믿고 따른다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 가장 큰 축복의 날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p. 24) 

 

--> '하나님의나라의 영적원칙'을 필자도 경험하였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 (인간의 절대절망은 하나님의 기회). 그래서 극한 고난은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다.

 

“하나님의 뜻을 찬양함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견디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는 말씀이 그제야 실감되었습니다”. (p. 24)

 

 4.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라(Day 16)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42:2) 

 

“난 어린 시절부터 변치 않은 갈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려는 갈망. 그 갈망은 본원적인 것으로 내 어린 시절의 숨은 고통들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이 갈망은 나만 지닌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본원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영화로운 순간들로 돌아가고픈 갈망 말입니다” (p. 74)

 

“갈망이 있었기에 난 세상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절절히 경험하며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현실과 갈망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내적갈등은 커져갔습니다. 하나님 추구와 세상 추구 그 충돌 가운데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였습니다” (p. 74)

 

--> 서평자도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이 본원적 갈망이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추구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 곧 기름부으심(the anointing)을 간절히 갈망하며 수 많은 영성을 깊이 다룬 신앙서적들을 섭렵하였다. 또한 은혜와 기름부으심이 있다는 전국의 기도원과 교회들을 방문하며 더 깊은 영성을 맛보며 경험하고저 노력하였다. 

 

“많은 사건들을 거쳐 드디어 그 순간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었을까요? 끊임없는 갈망과 그 갈망의 실현을 위해서 전심으로 간구한 것입니다. 난 매 순간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을 만나기 원합니다”라고 간구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는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p. 75) 

 

“주님을 갈망하십시오. 그 갈망을 부르짖음으로 전환시키십시오” (p. 76)

 

-기도-

 

“하나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해답이 없어 보이고 불확실한 이 땅의 삶에서 생명의 길을 발견하기 원하는 제 마음속 깊은 갈망을 외면하지 마시고 만나주십시오. 주님을 만나는 것이 제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개 해 주세요. 당신 안에서 삶의 굳건한 기초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주님만이 제 소망이 되게 해 주시고, 주님만이 제 삶의 목표 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갈망합니다. 아멘.  

 

 5.  <책속의 책> '바실레아 슐링크, 나의 이야기' (pp. 140-181)

 

평생 '예와 아멘'의 삶을 살다.

 

내 인생의 모토는 '주님이 내게 두번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하게 되면 순종하듯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와 아멘”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영적 자녀들은 나의 묘지에 “예, 아멘”의 기념판을 세워 주었지요.” (p. 140) 

 

“나는 20대 청년기에 조그만 부당함이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성격이 나에게 큰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외침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그후 10년이 넘는 '주님의 학교'를 통해 주님은 나를 다듬어 주셨습니다. 내가 꾸준히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은 그분의 사랑을 진정으로 내 마음에 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p. 144) 

 

모든 문제의 열쇠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성전 건축, “네 자신을 온전히 내게 맡기라” 

나의 날갯짓을 멈추고 주님의 바람을 타고 가다.

 

알프스 산에 200여개의 찬양판과 예배당을 세우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자 하는 소망과 기도는(요12:28) 가장 감동적인 성경구절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하나님께 영광 드리게 하소서?”는 우리의 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찬양판을 세우게 된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낼 때, 아름다운 알프스의 초원과 호수, 눈 덮인 산들을 바라보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토록 아름다운[답고] 영화로운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사랑과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영감으로 무엇보다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예배당과 찬양판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드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영광드리고자 하는 소원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찬양 판에 성경구절과 찬송가 가사를 새겨 아름다운 명소에 비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p. 162) 

 

“우리의 목표는 아름다운 스위스 산정 40여 군데에 찬양 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와 소동을 겪으며 우리의 믿음의 목표가 너무나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2-3년 사이에 앞프스 산에 100개 이상의 찬양 판잉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스위스 전역에 200여 개의 찬양 판이 설치되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p. 164) 

 

--> 우와 과연 바실레아 슐링크의 이 단순한 믿음과 그 성취를 보면서 큰 도전을 받는다. 필자는 두번째 스위스를 방문했을 때, 알프스의 그 초원/호수/설산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보면 눈물로 찬송하였던 감동이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고통이 클수록 열매는 더욱 풍성하다.

 

하나님 나라에서 통용되는 영적원칙이 있습니다. 치러야 할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열매는 더욱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도 우리가 당신과 하나로 연합되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때도, 믿고 따른다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 가장 큰 축복의 날로 바뀌게 될것입니다”. (p. 170)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어려움을 만나고 고통을 겪게 됩니다. 더 이상 견딜수 없다고 느낄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며 “예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주님의 보혈에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이 말을 신뢰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외칠때마다 항상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 힘을 통해서 다시 일어나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p. 173)

 

“오늘, 삶이 힘들어 고통받으십니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힘입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그 순간, 부활하신 주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p. 174)

 

나가는 말(결론):  

 

과연 나(우리)도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살수 있을까?  이 서평을 읽는 모든 독자를 대신해서 제빨리 대답한다. “예, 아멘!” 평생토록, 아니 1년 동안 그렇게 못살드라도, 한 달 동안은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살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우리”(p. 175)가 이 땅의 모든 거듭난 크리스천이요, 특별히 목회자/선교사가 아닐까? 대충대충 시늉만 내며 무늬만의 어설픈 신앙생활은 지난해로 끝장내야 한다.

 

<조지 뮬러처럼>, <바실레아 슐링크처럼> 매일/매월 이 작은 묵상시리즈 홀/짝수로 정하여 번갈아 가면서 (아니면 매일 2권다 함께) 기도시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오늘날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연합하여 하나 됨을 이뤄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들은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이들은 서로 격려하며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한 몸을 이뤄 예수님의 재림과 어린양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됨의 역사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거세어질 때, 고난의 한가운데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p.180)

 

--> 우리는 마땅히 교파와 교단에 메인 목회자와 선교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오랜시간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면서 각 나라의 교회와 선교사들과 교회지도자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느끼는 것이 참으로 많다. 한국 크리스천은 진정한 영적 연합과 하나됨에는 낙제점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히12:22-23)이라고 성경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 기쁨의 잔치가 펼쳐지며 찬양과 경배의 노래가 올려 퍼지게 됩니다” (p.180) 할렐루야! 

 

Peterahbae@gmail.com, 배안호 선교사(파라과이)

 

▲ 배안호 선교사(파라과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