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을 통해 교회가 깨달아야 하는 부분

황인상 기자 | 기사입력 2021/10/27 [06:20]

오징어게임을 통해 교회가 깨달아야 하는 부분

황인상 기자 | 입력 : 2021/10/27 [06:20]

▲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주목을 넘어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드라마 내용은 워낙 많이 알려진 이상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현 4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게임 내용을 가지고 풀어서 설명한다. 그것을 통해 겉으론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의 밝은 면이 있다고 하지만, 내면에는 운과 함께 남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 등을 특유의 색채와 소재로 풀어내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불편한 계층이 생겨났다. 바로 개신교인과 교회다. 드라마 또는 영화에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각자가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그 의도는 제작자나 감독이 방향을 잡았다 해도 평론가나 비판의 시각에서 볼 때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것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개신교인 중 일부는 <오징어게임>을 통해 ‘반 개신교’ 내지는 ‘안티 그리스도’의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나 크리스천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이와 비슷한 주장을 자신의 유튜브나 언론사 칼럼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유는 드라마 속 인물 중 하나가 목사라는 신분을 통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자로 나온 데다, 내용 중에서도 비상식적인 언행 등을 통해 개신교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는 것이다. 즉 불교 등과 같은 타 종교도 많은데 꼭 개신교를 콕 찍어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을 비판했다. 또한 드라마 속 상징이나 일부 묘사 장면 등에서 반 그리스도 추종자들이 뜻하는 것을 보여줬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사실 최근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 그리스도적인 내용이나 상징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재는 너무나 다양하다.  꼭 <오징어게임>이 아니더라도 교회의 입장에서 불편했던 사례는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에서 교회가 받아들이고 깊게 생각해야 봐야 할 부분 중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드라마 속 게임 참가자인 ‘456명의 그들’이다.  

 

드라마 속 참가자인 456명은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마지막 순간에서 게임을 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돈이다. 참가자 1인당 1억씩 책정된 456억의 상금은 인생의 끝에서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이 상금은 게임에 이긴 마지막 최후 승자에게 주어진다. 처음엔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잔혹한 게임의 일부를 경험한 이들이 과반의 뜻으로 게임을 중단하지만 되돌아간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게임에 합류한다. 역시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선 이들에게 다시 돈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해결의 열쇠일까? 돈이 생기는 족족 도박으로 날려버렸던 주인공 성기훈. 그것은 결코 돈이 좌절과 희망 없는 인생을 일으켜주는 핵심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오징어게임> 드라마 속에서 사실 교회가 비중 있게 여겨야 할 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선택을 앞둔 자들이 향하고 바래야 할 것은 돈이 아닌 영혼의 구원, 바로 교회라는 점을 깨달았어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나 유명한 성경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이자 사실이다. 인생의 마지막 나락에서 지친 인생이 찾아야 할 곳은 <오징어게임>이 아닌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그들이 왜 교회가 아닌 돈을 좇아 탈락자에게 잔혹한 죽임이 허락되는 게임으로 향하게 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이 신드롬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읽어야 한다. 이것은 곧 지금의 교회가 힘들고 지친자를 박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의 문이 부와 명예를 가진자에게만 친절하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닌지 따끔한 반성을 요구한다. 

 

<오징어게임>은 어쩌면 당신의 교회는 빚쟁이에 쫓겨 도망치는 자를 받을 준비가 됐는가? 사회에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지탄을 받는 자를 품을 마음이 있는가?  수고하고 지친자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와 관련 사건이나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있자면 그들의 발길이 교회로 향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드라마 속 참가자 중에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자가 교회 목사라는 설정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예수의 친구는 당대 권력자나 부자가 아니었다. 예수는 세리와 창기와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을 죄에서 나오도록 치유를 했다.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낮은자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지져스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참가자 모두가 회개의 승자가 되며, 게임 끝에는 ‘영혼구원’이라는 상금을 줄 때. 교회가 세워진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탐욕과 살육이 난자하는 게임으로 향하는 지친자들을 교회가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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