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두 교회의 분쟁을 보면서!

이상기 목사 | 기사입력 2021/10/22 [03:11]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두 교회의 분쟁을 보면서!

이상기 목사 | 입력 : 2021/10/22 [03:11]

 

정든 고향을 떠나 낮선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7백여만 한인들이 전 세계 단일도시 가운데 가장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은 Los Angeles 입니다. 이곳에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솔로몬 성전의 입구에 세워진 두 개의 놋 기둥 야긴과 보아스와 같은 교회로 동양선교교회와 나성영락교회가 있습니다. 

 

나성영락교회는 1976년에 고 김계용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4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동양선교교회는 1970년에 고 임동선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51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교회는 그 동안 모든 이민교회의 표상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장하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왔습니다.

 

한 때는 세상 모든 교회가 어려움 당해도 이 두 교회만은 절대로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생각이 되었었습니다. 마치 만세 반석과 같은 교회로 모든 목사님들이 부러워하며 사모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회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같은 시기에 교회안의 내분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교회의 문제가 교회안의 성도들의 문제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많은 한인들의 관심이 되는 것은 교회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게 되어 교회문제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이었던 성도들 간에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이는가하면, 교회가 속한 노회와 총회간의 충돌로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할 동역자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저주해야 하는 형편에 처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염려와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개 교회의 일로 세상 법정에 소송으로 이어져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개의 교회중 하나인 어느 교회는 수년전에 법정 소송으로 교회가 지불한 비용만 150만 불을 지불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법정으로 비화된 교회 문제로 교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필자에게 전해준 분의 말에 의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정성으로 바쳐진 귀한 헌금이 그렇게나 많이 재판 비용으로 지출된 것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런 일이 반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도 1970년대 후반에 동양선교교회에서 교인으로 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교회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이민의 삶을 통하여 이곳에서 처음 교회를 만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전에 알지 못하던 영적인 삶을 교회로부터 받았던 은혜와 감동이 밑거름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기에 교회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필자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지금의 교회를 허락받아 내년 1월이면 교회설립 41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민교회를 섬겨오면서 기쁨과 슬픔 낙심과 감격의 순간ㅌ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의 축복은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주님의 은혜가 컸습니다.

 

여러 번의 교회적 위기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 교회의 이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나의 힘이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직회나 당회를 할 때도 그랬고 성도간의 문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당의 주장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흐르는 물을 역류케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 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귀를 기울이기를 힘썼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주장을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훗날 주님이 날 심판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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