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자기 방식의 사랑
김이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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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30 [23:0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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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슬 선교사(아프리카 말라위 북서진선교회)

최근 막내가 거품 목욕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마침 기존에 있던 것을 다 써서 아이를 위해 새 거품제를 사서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 아이와 함께 즐겁게 목욕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꾸 울면서 욕조의 거품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보기도 하고 협박도 해보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울며 엄마를 찾아 밖으로 나오려고만 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아빠는 아빠대로 상심도 하고 진이 다 빠진 상태였고, 아이는 아이대로 악을 쓰며 우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왜 이러는지, 단순히 엄마를 찾느라고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뒤 깨달았다. 누나와 거품 목욕을 같이 하는데 막내는 누나들처럼 거품이 있는 욕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거품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그렇다. 아이는 거품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지 거품 목욕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를 오해한 채, 우리의 방식을 강요했고 우리 방식의 사랑을 거부한 아이에게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는 부모의 폭력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질까?

 

게리 채프만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사랑 표현의 방식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등 크게 이 다섯 가지의 방법으로 우리의 사랑이 표현되고, 자신이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법이 각 사람에게 드러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남편이 아이를 돌봐주거나 청소를 하는 식의 봉사를 통해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봉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같은 봉사의 영역이지만 각자가 잘 하고, 또 원하는 표현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부부가 각자 열심히 가정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이 봉사의 영역에서는 본인이 사랑받는다는 충분한 느낌은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사람의 사랑의 표현 방식은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때부터 남편이 요리를 하고 있으면 그것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늘 하던대로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의 사랑의 언어를 읽어주기 시작하니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자기의 사랑의 언어를 상대방이 알아주고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의 언어를 알고 이해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아빠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고정적으로 쓰는 말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매번 들어가는 말이라서 ‘또 이 말을 썼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먹고 싶었던 어떤 한국음식이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공급되었을 때, 감격하며 “와,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 것 먹고 싶었는데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채워 주셨네요”라고 기도했다. 바로 그 때, “아, 우리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말이 바로 이 뜻이구나,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아이들도 그것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것이고, 본인들이 사랑받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아이들이 같은 말을 써도 그 의미가 더 진하고 풍성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아이들 방식의 사랑의 언어를 깨달았을 뿐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깊이와 넓이가 달라졌다.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는, 유일한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내버려 두시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양자로 삼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해놓고 그것을 믿지 못하면 다 지옥에 간다고 한다. 얼마나 폭력적인가!?” 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고 은혜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점점 더 크게 더 진하게 더 감격적으로 느껴진다.

 

예수님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일까? 자신을 온전히 부인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그 삶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 또 우리 각자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언어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본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이런 것임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도 이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내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받기를 원한다. 내 방식, 내 틀, 내 생각을 고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잘 아시는 우리 주님은 때로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그런데 내 틀, 내 방식, 내 생각을 버리고 내 것을 하나님의 방식과 뜻으로 바꾸면 더 큰 사랑을 깨닫고 느끼고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더 많이 더 깊이 느끼고 누리고 싶지 않은가? 내 방식의 사랑을 포기해보자. 성령님께 아뢰어보자. 내 방식 내 틀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사이즈와 스케일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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