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읽기(42) - 예수의 달란트 비유, 재능 계발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 시상, 달란트 설교를 다시 생각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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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6 [00:0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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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가르치는 이들과 교회에서 ‘달란트’라는 단어는 아주 익숙합니다. 많은 경우, ‘재능’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달란트가 재능이라는 뜻을 가진 것은 분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달란트는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까요? 그것은 실재하지 않았던 경제적 가치, 금덩어리에 닿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란트가 정규직 노동자의 20년 치 봉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돈이었다면, 그 경제 가치가 조금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일만 달란트 등으로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그 가치가 어마 무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치 단위가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것이 뭔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 당시 서민들은 현금 몇 데나리온 보유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개 날마다 막노동을 뛸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품삯도 받지 못하던 시절을 살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달란트, 우리가 쉽게 재능 정도로 다루는 그 달란트에 얽힌 이야기를 오늘 살펴봅니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복잡한 계산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 Willem Drost의 The Unmerciful Servant(1655)

 

예수 시대의 실물 화폐 가치

 

잠시 예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최고의 화폐는 금화로 25데나리온에 해당했습니다. 가장 낮은 단위로는 '렙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발행한 화폐로는 최소 단위였습니다. 렙돈은 유대인 사회에서 제한적으로 통용되던 존재였습니다. 1/2 고드란트 가치였습니다. 성경 독자에게 익숙한 데나리온은 은 4g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최고의 정규직이었던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할 때, 일 년 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 돈을 한 푼 쓰지 않고 20년 가까이 모은다면 6,000데나리온에 해당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 달란트의 가치였습니다. 편의상 20년 치 봉급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금 30㎏ 정도입니다.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무게 기준(20~50㎏)은 달라지곤 했습니다. 예수시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 시절에 이런 금덩어리를 본 적도 없는 이들이 절대다수였을 것입니다. 현재 국제 금 시세에 따르면 1㎏은 35만 달러 정도입니다. 한 달란트는 거의 1천만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면 일만 달란트는 1천억 달러가 훨씬 넘는 것이겠지요. 여하튼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런데 20년 전 50년 전에 1천억 달러였다면 또 달라질 것입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절인데, 예수의 이 비유 속에는 서민은 물론 일반 백성에게도 전혀 현실감 없는 단위인 달란트가 등장합니다. 1 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였습니다, 그리고 이윤으로 남긴 금액이 2달란트, 5달란트였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큰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비유로 소개되는 이 이야기 안에서 단위를 이런 비현실적인 단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나 보았을지도 모르는 돈인 세겔(4데나리온, 은화), 데나리온(은화)을 등장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혹시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들었을 이들의 의식 속에 달란트에 얽힌 어떤 그림 언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당시 달란트라는 가치(단위)가 등장하는 영역은 어디에,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식민지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제국에 바쳐야 하는 세금의 규모를 표시하던 것이 아니었던가요? 로마 제국에 해마다 바쳐야 할 국세의 규모가 달란트로 표시되었습니다. 달란트는 지역과 성(도시)의 징수되어야 할 세금의 규모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로마제국에 바쳐야 했던 관세, 인두세(주민세), 토지세 등의 세금의 규모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몇 달란트나 되었을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분봉 왕 헤롯이 다스리던 베레아(요단강 건너편)와 갈릴리 지역의 세수 총액은 200달란트, 이두매와 유대, 사마리아 지방을 다스리던 아켈라오의 세수는 600달란트, 합하면 800달란트 정도였습니다. 환산하면 480만 드라크마(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헤롯 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주전 10~기원후 44, 바울 당시의 왕) 시절은 이보다 세금 규모가 컸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전체 지역에서 1,000달란트가 넘었습니다.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이두메, 베레아(요단강 건너편)까지를 포함한 전체 세수 총액입니다. 600만 드라크마(데나리온)에 이르렀습니다. 당시에 이집트에서는 6천 달란트 정도를 로마제국에 바쳤다고 합니다.

 

▲ James Tissot의 과부의 두렙돈(The Widow’s Mite)(886-94)

 

다시 생각하기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그 단위가 이제는 묵직하게 느껴지는지요? 1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이 비교되는 용서받은 자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오는지요?. 100데나리온과 6,000만 데나리온(일만 달란트)가 비교되나요? 60만 분의 일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고대 이스라엘 전체 지역의 일 년 세수의 10배가 넘는 엄청난 돈을 빚졌다는 것도 묘합니다. 더욱이 자신이 탕감받은 것의 60만 분의 일을 탕감해 주지 못하는 모습도 아주 역설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그렇게 크다는 것, 하나님은 돈을 만들고 돈을 주무르고 돈으로 지배하는 가이사 아구스도 로마 황제 위에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능력, 통 큰 메시지, 통근 용서를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가 단지 재능으로서의 달란트 늘리는 것에 주목하는 이야기였을까요? 아닙니다. 교회에서 실물 경제 가치로서의 예수님의 비유를, 예수 시대를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렙돈, 두 렙돈, 고드란트, 앗사리온, 두 앗사리온, 무나, 데나리온, 드라크마 등을 단어만이 아니라 실물 가치로 비교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익숙하기에 그냥 지나치는 것, 그러나 보니 현실 감각도 없고, 시대 감수성도 없는 동화 수준의 성경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에서의 달란트 시상이나 달란트 개념, 조금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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