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 ㉝ 우간다 이종숙 선교사
돌봄 · 설교 · 가르침 넘어 교육선교 주력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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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31 [01:4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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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과 샤머니즘 극복하려면 어려서부터 신앙교육 절실

 

▲ Bernard Bashaasha 박사(왼편)와 이종숙 선교사. 이 선교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마크, 로날드, 아미 세 자녀의 어머니이며, 남편과 함께 RehobothBashaasha Ministries를 이끌고 있다.남편 Bernard Bashaasha는 Makerere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농학석사와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케만선교회 소속 신학교 ANTS(AllNations Theological College)의 Local Governor 이사장, 우간다의 국립대학교인Makerere Univercity 교수이며, College of Agricultural & Sciences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어느 날 큰 아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앓던 중, 한 밤중에 숨이 넘어가는 아찔한 순간,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불쑥 나온 말이 ‘아이를 살려 주시면 일을 하겠습니다’ 였습니다. 순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아이의 목 젓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순간 기도를 막고 있던 음식 덩어리가 튕겨 나오며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깨달은 것은 이 우간다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종숙 선교사는 1989년 남편을 따라 우간다에 발을 디뎠다. 남편은 우간다 현지인이다. 남편이 한국에서 유학할 당시 만나 결혼해 우간다에서 자녀들을 낳고, 1993년 가족들과 함께 남편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후 1998년 남편이 유학을 마치자 다시 돌아와 현재까지 우간다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한 번도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나 부르심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 유학 온 남편을 만나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고, 당연히 남편의 고향인 우간다로 가는 것에 대해서 부담이나 불편함도 갖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셨고 결혼을 허락하셨다는 확신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다만 처음 우간다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다른 환경 때문에 당혹했던 일 그리고 살아가면서 주변 현지인들과의 마찰에서 오는 갈등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문화 충격은 저에게 적잖은 도전으로 아픔과 고통 그리고 살 소망을 잃을 지경까지 가게 했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종종 말라리아에 걸려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저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우간다에서 어떤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길 원하시는지 찾기를 거듭했다. 2002년, 현재까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부터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사역이 시작됐다.

  

길거리의 아이들(called street kids)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빵과 티를 나눠 주기도 하고, 도시 공원이나 길가에 빈둥거리며 누워있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현지 교회사역과 교회에 설치된 초등학교 교사들의 훈련과 한 달에 3일의 컨퍼런스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지방 사역을 갈 때면 맨 흙바닥에 메트리스만 깔고 잠을 자기도 하고, 수도 없는 영적인 공격과 죽을 만큼 아파 집회를 포기할까 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 이종숙 선교사가 2018년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이 선교사는 2012년에는 한국의 케만선교회에서 정식 파송을 받고 본격적인 자비량 선교사로서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4년이 더 지난 2016년에야 교육 분야에 선교의 사명을 깨닫는다. 그동안 그녀는 우간다 교회내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무속신앙과 오래된 샤머니즘적 전통과 습관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보고 어려서부터 바른 신앙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한 사역의 사명을 새롭게 가지면서 2017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20에이커의 땅을 허락받는다. 그리고 2018년에는 당시 함께 사역했던 협력 선교사와 현지인들과 함께 1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2019년부터 선교교육센터를 위한 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간다에는 아직도 귀신의 존재를 일상적인 생활에서 친밀하게 실천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가까이서 약 30년가량 지켜 본 바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차를 사거나 집을 짓거나 혹은 사업을 시작해도 빼 놓을 수 없는 행사가 있는데, 그것은 닭이나 염소 등을 잡아 피를 뿌리는 제사 문화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들었던 어린아이나 숫처녀를 바치는 인신제사와 같은 것들이 자신들의 부를 위해 무당이나 주술사들을 통해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우간다는 카톨릭을 포함해 기독교 인구가 60-70%나 되지만 여전히 선교사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자체적으로 신학교들과 훈련받는 단체들이 여러 곳 있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고, 특히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집회들을 통해 안수를 주고, 곧 바로 목회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현재에도 여전히 어떤 질병이나 사고가 나는 경우에 병원보다 무당들에게 치료를 받으러 갑니다. 심지어는 교회가 아직도 일부다처제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자녀들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를 연약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우간다를 포함한 아프리카 교회들에는 자칭 예언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들로 인해 교회가 혼란스럽고 잘못된 교리에 빠지기도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이단들 때문에도 기성 교회들이 크게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들어온 구원파(박옥수), 신천지(이만희), 통일교(문선명), 만민중앙교회(이재록) 등의 이단들이 현지 교회와 손잡고 포교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그 외에 여호와 증인, 몰몬교 등 많습니다. 특히 구원파는 아프리카 정부들과 손을 잡고 마인드 컨트롤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단들의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것은 그들이 가져오는 물질 때문에 이단인줄 의심하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 2017년 목회자 수련회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 크리스찬투데이

 

이러한 여러 이유들과 현지에서 자식을 키우면서 깨달은 아프리카 가정에 뿌리박고 있는 어두움의 영들을 바른 신앙교육이 아니면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이 선교사는 교육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갖게 된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 선교사는 선교센터가 완공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성경 통독반 운영, 양서를 비치한 도서관 운영, 강당과 숙소를 마련해 영성훈련과 성경학교 운영, 영적 정신적 성숙을 돕는 상담소 운영, 누구나 와서 기도하고 묶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기도의집 운영, 대학을 진학할 형편이 못되는 학생들을 위한 기술학교, 선교사 훈련교육 등을 실현할 부푼 꿈을 안고 있다.

 

“청소년기와 청년의 때를 지나며 승리의 자리에 서지 못하면 우리는 이 귀한 생명들을 세상이라는 적에게 영원히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세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녀들이 겪었던 큰 고통의 시간들을 저로 하여금 보게 하시면서 자녀세대를 도와야 한다는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자녀세대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통로가 되어서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는 많은 곳에 가서 전도자로 혹은 목사로 또는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 아프리카 땅이 더 이상 전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는 곳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땅이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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