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쥐, 벼룩 그리고 왕관
장덕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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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9 [04:2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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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 Mundi. 아드리아 해안 뻘밭에 말뚝 백만 개를 박고 그 위에 주거지를 건설한 도시, 베네치아는 세상의 다른 곳이다. 게르만족 압력으로 더는 갈 데 없는 땅끝까지 밀려온 곳이요 뻘에 말뚝이라도 박고 살아 내려는 인간 의지가 서린 곳이다. 그렇게 고난으로 세운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시커먼 세균들이 모여든다. 

 

분명치는 않으나 1348년 근방일 테다. 베네치아 항구는 아름다운 돛으로 장식한 선박들로 가득하다. 베네치아는 한 가지 조건만 갖추면 입항하는 모든 선박을 환영한다. 베네치아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거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일수록 귀한 대우를 받는다. 때문에 베네치아는 세상에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때 들어온 세균도 베네치아에는 없는 것.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여 유럽에서 인구 3할을 쳐낸다. 페스트!

 

새해 벽두부터 왕관 쓴 세균의 등장으로 온 세상이 난리다. 해괴망측하고 괴상야릇한 것들로 가득한 저 중국 내륙. 700년 전, 건조한 내몽고에서 출발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다만 숙주로 쥐 대신 인간을 택한다. 인간의 빠른 이동을 세균도 간파하고 있다. 몸속에 침투한 세균은 3개월 만에 이탈리아 북부에 도착, 페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유럽을 휩쓸고 나간다. 속수무책 죽어 나간다. 장례식은 지나친 허례다. 군용트럭은 시체를 싣고 매장할 땅을 찾아 남으로 이동한다. 과히 이번 세균은 왕관을 쓸 만큼 강대하다. 쥐나 벼룩 등짝에 붙어 옮겨다닐 놈들이 아니다. 인간을 싸그리 죽이겠다는 집념이 뚜렷하다. 

 

그 어떤 때도 교회가 멈춘 적은 없다. 혁명 내란 전쟁 살육으로 핏물이 벽을 타고 흘러도 교회는 멈추지 않는다. 외려 그럴수록 그리스도를 부르는 우리 목소리는 커진다. 되레 그럴수록 그리스도를 찾는 우리 기도는 더욱 뜨겁다. 지금 온 세상 교회는 문을 걸어 잠근다. 종소리는 울린 지 오래다. 어디서도 그리스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왕중왕 그리스도께서 써야 할 그 왕관을 세균이 쓰고 돌아다닌다. 모두가 그 앞에 엎드려 숨을 죽인다. 고개 들어 숨 쉬는 순간 주검이 된다. 섬뜩하다 !

 

금관의 예수는 어디 있는가.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중략)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 금관의 예수 >

 

거리에 인적이 끊겨 두렵고 외롭다. 걷잡을 수 없는 세균의 공포에 모두들 거리를 떠나 암흑에 묻혀 지낸다. 사람들이 무심히 죽어 나가고 삶의 터전이 여실히 무너져 간다. 인간의 욕심과 더러움으로 빚어진 세균들이 다시 인간을 파먹고 있음을, 땅에 떨어진 동전 한 잎 주우려 머리 처박고 사느라 우리는 모른다. 땅 위에 더는 먹을 것이 없고 사방이 온통 막혀도 하늘만은 바라볼 수 있건만, 거리를 떠나 마음을 닫고 눈을 감기에 진정 우리는 모른다. 그리스도께서 늘 곁에 계심을. 

 

나무 십자가에 걸린 예수를 바라본다. 언제나 그랬듯 그리스도는 침묵한다. 가시 면류관 밑으로 피가 흐르는데, 쇠못 친 손과 발밑으로 핏물이 흐르는데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통조차 침묵을 지킨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묵상한다. 침묵의 말씀이 묵상의 시간 속을 흐른다. 침묵으로 그리스도께서 고통의 시간을 극복한 것처럼 기도로 우리는 시대의 고난을 견디어 내야 한다. 

 

지금은 온 세상이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의 기도를 해야 할 때다. 

 

* 페스트의 전염 루트에 관한 몇 가지 설 - 몽골군의 크림반도 침공 시 사용한 생물학전설 (시체 투기) 혹은 주검 투성의 12척 제노바 상선이 시칠리아 메시나 입항 때 유입 등 소수 이론들 - 은 생략하며, 현재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극심한 공포로 치닫는 상황과 연계, 베네치아 유입설을 상정함

 

▲ 장덕영 수필가

장덕영 수필가는 2016년 수필 <어머니의 실패>로 미주한국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현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M.div 과정을 밟고 있으며, Essay editor 수필 논문 책자 교정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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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의 전쟁 스칼렛 20/03/31 [09:41] 수정 삭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인 것 같아 겁도 나고 화도 난다. 무엇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 무성한 소문의 진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이제 인간이 자연을 독점하지 말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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