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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늪에서 건져낸 고 김갑준 집사님의 그리움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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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5 [07:0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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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전 오랜만에 라스베이거스의 작은 호텔에서 하루 밤 머물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13년 째 창단 멤버로 섬기고 있는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 제12회 정기공연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은혜롭게 마치고 2박 3일 동안 54명의 단원들이 2박 3일 동안 Brace National Park & Zion national Park로 친목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여행 중 첫날밤을 라스베이거스에 머물게 되었을 때에 한 동안 기억에서 멀어진 고 김갑준집사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32년 전으로 기억이 됩니다. 고 김 집사님은 해병대 예비역 준장이셨습니다. 평생을 직업 군인으로 사셨습니다. 군인으로 사셨던 분들의 모습에서는 알게 모르게 군인의 모습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김 집사님에게선 그런 모습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겸손하시고 대화중에도 한 번도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큰 키의 집사님은 교회 안에서 인사를 하실 때도 항상 허리를 굽혀 먼저 인사를 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언제나 맑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김 집사님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집사님은 한 동안 교회에서 회계를 맡으셨습니다. 회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김 집사님처럼 회계 보고를 잘 하셨던 분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4-29 폭동 당시는 잉글우드시에서 대형 마켓을 경영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흑인 폭도들에게 방화 물로 희생당한 첫 번째 건물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어느 날 제게 이틀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을 모시고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도 경험하시고 아셔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이 데리고 간 곳은 라스베이거스였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내렸는데 길고 검게 빛나는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 리무진을 타 보았습니다. 곧 바로 우리가 탄 차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방에 도착 후 집사님은 새 돈 500불과 식사 쿠폰을 저의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그렇게 큰돈을 만져보지 못했었습니다. 구겨지지 않는 100불짜리 다섯 장을 주신 겁니다. 30여 년 전의 500불은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사례비로 한 달에 5-600불을 받을 때였습니다. 당시 4식구가 살던 아파트 한 달 렌트비가 110불이었는데 그것도 제대로 내지 못해 두서너 달씩 밀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에는 11달 동안 아파트 비를 연속적으로 내지 못했던 때도 있습니다. 잠시 여러 생각이 머릿속으로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런 기회가 또 있겠나, 주어진 기회이니 한번 즐겨보자고 하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이 돈이면 4달치 아프트 밀린 돈을 갚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동안 망설이다가가 결심이 섰습니다. 그 돈을 쓰지 않고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틀 동안 좋은 식사를 하며 도박장 주변을 이리저리 돌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갔지만 함께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집사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알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얼마나 돈을 잃으셨습니까?” “재미는 있으셨습니까?” “이곳에 오신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그 어떤 질문도 제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 또한 1불도 머신에 넣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느낌과 감정을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를 위한 경비는 500불만이 아닙니다. 왕복 비행기 표와 호텔비 그리고 식사비까지 합하면 그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10여 년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기까지도 필자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집사님이 주셨던 500불 중에서 3달치 아파트 렌트비를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한 달 생활비로 사용했었습니다. 

 

한 참 늦었지만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겨주시고 떠나가신 고 김갑준 집사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케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의 자랑이 되어 주셨던 집사님을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만나게 하심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님 나라에서 집사님을 만날 때 그 때 일을 감사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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