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그 나무아래 서면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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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3 [06:2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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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우림으로 가득한 집 앞 숲은 사철 푸르다. 그 한복판에는 내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사를 오며 심어 둔 작은 묘목 하나가 세월만큼 자라 하늘을 아우른다. 예쁠 것도 없이 정원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그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마른 대나무를 의지하고 있던 여린 생명이 저리 우람하고 늠름하게 자랄 것이라 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톰하고 검푸른 잎사귀들은 단풍으로 물들 줄도 모르는지 야무지게 겨울을 지나고 젖니처럼 밀고 나오는 새순에 자리를 내어 준 후 홀연히 갈잎으로 흩날린다.

어느 해부터인지, 성큼성큼 숲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여름이 시작되면 늙은 호박 덩어리보다 훨씬 큰 농익은 과일을 들고 가는 모습들을 보며 흐뭇했다. 해마다 열매는 더욱 풍성해지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무를 촬영하거나 올려 다 보고 있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누구든 그 숲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이 저렇게도 신기할까?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나는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앙증맞은 연둣빛 얼굴들을 내밀고 봄 길 마중을 하였다. 조막 만한 것들이 도돌도돌 한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그 나무 아래 서성이는 발걸음들이 줄을 이었다. 머잖아 늙은 호박처럼 길쭉하게 매달려 익어가다가 누군가의 선물이 될 것이다. 투박한 생김새와 익숙하지 않은 내음 때문일까? 두어 번 맛을 본 것 외에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인지 내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 주는 것은 기특하였지만 조석으로 눈과 심신을 쉬게 하는 관상용으로 즐겼을 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일찍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청아한 노랫소리를 조석으로 들려주고 저물도록 이층 베란다를 푸름으로 장식해 주었다. 꽃은 언제 피웠다 지는지 들레지 않고 묵은 둥치에서 몸뚱어리를 내미는 자카Jaca(Artocarpus Herterophyllus)! 멍게처럼 물컹한 알맹이들이 빼곡히 차오르도록 두툼한 배를 불려서 두어 가족이 먹고도 남을 푸짐한 몸통을 내어준다. 쫄깃하고 달콤한 맛에 길든 이들에게는 과일중의 과일이라 칭송을 아끼지 않을 만도 하지만, 난 도무지 무엇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두루뭉술한 열매도 그렇고, 감 잎 닮은 무성한 잎새도 사철 푸르기만 한데 뭇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기한 놈이다. 얼마 전 연한 가지나 하나 얻을까 하고 그 나무 아래로 들어섰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몇 발짝 떼어 놓기도 전에 감탄하고 말았다. ~~~형언할 수 없이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슬며시 휘감겼다. 신비롭고 달달한 향은 영혼까지 스며들 듯 깊이 파고 들어 심신을 쾌적하게 하였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서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머뭇거렸구나!

기다리고 그리는 님의 향취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꺾꽂이로 뿌리를 내려 분재를 해볼 심산으로 들어갔던 사사로운 감정들이 사라지고, 홀연히 사차원의 세계로 이동한 것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참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계내 아버지의 솜씨는 참으로 놀랍다! 만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은밀하고 조화롭게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 바람도 구름도 잎새들도 한결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화롭게 한다!

생명의 주를 향한 미물들의 축제, 천지의 여백에 충만한 존귀한 님의 숨결! 임재의 가득함은 체험하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나도 이 숲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무의 비밀을 영영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이 평강 이 행복 하늘의 선물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어나 그 나무 아래로 갈 일이다. 나무 십자가 아래서 죄짐을 벗고 인생에게 베푸시는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덧입혀 천국을 누리게 하시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샘을 열어 주시며 아가의 동산으로 이끄실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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