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문화로 성경읽기(35) - 성경 속 이야기의 무대는 밋밋한 공간이 아니었다.
호수 건너 풍랑 지나 산 넘어 산으로
김동문 선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9/10/24 [22:04]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갈릴리 호수 서쪽(성경 속 갈릴리 지방), 호숫가를 따라 막달라, 게네사렛, 가버나움 등이 이어진다. 건너편은 데가볼리 지경이다.     © 김동문 선교사

 

우리가 익숙한 장소는 눈을 감아도 눈앞에 훤합니다. 그 길도 방향감도, 높낮이에 대한 느낌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누가 어디서 어디까지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그 글을 갈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그 길 주변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선명합니다. 당사자가 되어서 그 길을 걷는 나 자신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우리는 성경 이야기 속 공간 이름을 읊조릴 뿐, 그 현장에 대해 궁금함을 갖지 않습니다.

 

오늘은 성경 속 이야기로 들어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다시 읽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여도 각 사람이 처한 처지나 상태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뒤섞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같은 감정, 같은 느낌, 같은 생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양한 감정, 드러나지 않으나 당연히 짚어 봐야할 성경 속 인물에 주목해봅니다. 아주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12해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곧 마가복음 4장, 5장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속으로

 

▲ 갈릴리 호수에 날이 밝아온다. 밤새 고기를 잡았던 배가 하루 일상을 마무리하고 있다.©김동문 선교사

 

마가복음 4, 5장을 다시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사건 발생 시점을 떠올려보며 일어갑니다. 노을빛이 물들 때 시작하여 한 밤중, 먼동 틀 무렵, 다시 해질 무렵, 한 밤중, 먼동 틀 무렵, 밝은 아침,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뜬 시각, 오후로 시간을 흘러갑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성경을 시간의 흐름과 거리감을 바탕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입니다.

 

노를 저어 바람을 맞서면서 호수를 건넌다면 시간당 몇 킬로미터나 갈 수 있을까요? 계절과 환경 조건, 사람과 배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겠지요. 갈릴리 호수는 저녁이 되면 동에서 서쪽으로 물이 움직이곤 합니다. 낮에는 그 반대입니다. 시간대에 따라 호수를 건널 때 걸리는 시간도 달라질 것입니다. 노선에 따라 두 세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한 시간에 5, 6킬로미터를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느 겨울철 해질 무렵(막 4:35)에 제자들과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서편 호숫가 주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호수 동편 데가볼리 지경으로 이동합니다. 예수 시대 갈릴리 호수 주변에는 최소한 15개 이상의 고기잡이배와 여객, 화물 수송용 배를 위한 나루가 있었다. 갈릴리호수 동쪽 데가볼리 지역(요르단 암만까지 이어지는 땅)은 ‘거라사인의 지방’(막 5:1, 때로는 가다라 지방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것은 한 나라나 민족을 표현할 때 대표적인 도시 사람으로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면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갈릴리는 저녁노을에 노란빛으로 반짝거렸습니다. 호수 한복판에 접어들 때는 이미 밤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과 달과 별빛만이 반짝입니다. 그런데 호수를 건너는 그 길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겨울철이면 갈릴리 호수 서편의 완만한 구릉지대를 넘어 호수로 불어온 바람이, 상대적으로 가파르기 그지없는 호수 동편(골란고원)을 넘어가는 과정에 돌풍과 풍랑이 일곤 했습니다. 풍랑으로 시달리던 시간은 어느 시간대였을까요? 밤중이었을까요? 닭 울 때쯤이었을까요? 얼마나 시달렸을까요? 제자들은 죽었다 살아났습니다. 갈릴리 호수 동쪽 호숫가, 거라사인의 지방 즉 데가볼리 지역에 들어섰습니다. 그때는 어느 시간대였을까요? 닭 울 때쯤이었을까요? 먼동이 트는 시간대였을까요? 갈릴리 호수 동편에서 먼동이 트는 것을 언제 마주했을까요? 비탈길을 따라 골란고원으로 올라갑니다. 저 멀리서 먼동이 터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잠잠하기 그지없는, 푸른빛 그 자체인 갈릴리 호수가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노을이 지던 시각부터 먼동이 터오는 시각은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이 과정에 제자를 맞이한 것은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인 사람의 거처는 무덤입니다. 유대인은 정결과 거룩을 지키기 위해 시신이 닿는 것, 무덤 근처를 가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또한 그 주변은 돼지 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 시대에 돼지는 로마 신전 지역에서 사육되었습니다. 사실 로마의 신전은 도시의 중요한 곳에 자리했습니다. 이것은 로마 도시 주변에서 돼지가 사육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돼지 사육 환경은 소 목축 현장이나 양과 염소를 치는 광야와는 다른 환경입니다. 또한 돼지는 음식이 아닌 신들을 위한 제물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른바 제수용품인 것입니다. 돼지 그리고 무덤, 부정한 자 이 모두는 유대인으로서 기피하는 대상입니다.

 

얼마 정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렀는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호수 저편으로 옮겨갑니다. 이 때는 언제쯤이었을까요? 물살을 거슬러 갈릴리 호수 서쪽으로, 건너편으로 건너오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느 시간대였을까요? 먼동이 틀 무렵, 아침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배가 호숫가에 닿자마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의 딸이 죽어간다고 살려달라고 합니다. 구경거리가 난 듯 엄청난 사람들이 야이로와 예수의 대화 자리로 모여들었습니다. 

 

다시 생각하기

 

▲ 갈릴리 호수에 여명이 터온다. 그 뒤로 골란 고원(성경 속 데가볼리 지경, 거라사인의 지경)이 가로막아 서있다.     © 김동문 선교사

 

갈릴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려면, 배를 타고 가는 것이 당연 가장 빠른 길입니다. 걸어가려면 2, 3일이 걸릴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로 가도 두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대로 쉴 틈도 없던 제자들의 지친 몸이 다가오는지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여유롭게 빵 한쪽을 들 틈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예수님은 풍랑이는 바다 위 배에서 쪽잠을 주무셨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야이로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기습적으로 예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한 시가 급한데,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는 것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그때는 어느 시간대였을까요?

 

이렇듯 성경 속 이야기에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성경 이야기의 무대에 대한 공간 감각, 거리감을 이해하고, 높낮이, 오르막길, 내리막길, 평지, 산지, 골짜기를 이해한다면, 성경은 한결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내가, 우리가 마가복음 4장, 5장의 이야기 속의 한 등장인물이었다면, 이 이 이야기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어떤 감회를 가졌을까요?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