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통 북한 관련 뉴스로 뒤숭숭한 채 2013년은 저물고 2014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섰다. 이제야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성경책이지만 131년전인 1883년, 한글로 된 성경책이 중국 봉천을 출발한 이성하에 의해 압록강변에 도착했을때만 해도 불온문서였다. 관가에 알려질까 두려워한 이성하가 묵던 여관의 주인은 이 문서 일부를 압록강에 흘려보냈고, 또 다른 일부는 불에 태워 흔적을 없애버렸다. 훗날 이 사건을 보고받은 존 로스 선교사(1842-1915, 스코트랜드서 파송된 중국선교사. 최초의 한글성경 번역자로 한국 복음화의 기초를 놓음)는 이렇게 예언을 했다. “성경책이 던져진 강물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생명수를 얻을 것이며, 불에 탄 성경의 재는 한국교회를 자라게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
그 옛날 복음의 베이스캠프 격인 압록강은 지난 60여년째 복음의 빗장을 굳게 닫고 있기는 하지만 강물과 가시철망 틈새는 탈북난민들의 구원통로 역할도 해왔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것이 70년만의 일이었다. 북한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수립된것이 1948년. 그로부터 70년이라면 2018년 이다. 북한지하교회와 신자들이 자유로이 신앙생활할수 있는 2018년을 감히 꿈꾸어 본다.이에 본지는 북한선교를 향한 미주한인교회들의 역할과 효율적 방안에 대해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목회자 1호인 김요셉 목사를 통해 들어 보며 기도제목을 나눈다. “북한 복음화를 위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세우소서. 압록강 생수를 통해 오늘에 이른 한국교회와 해외한인교회가 해야할바를 들려주소서…” <편집자주>
탈북자 출신 미주목회자 1호 김요셉 목사, “최근 북한정세는 변화의 시작 가까와졌다는 조짐”
물량공세 앞세운 구제와 선교는‘글쎄’… 북한선교학 강의 통해 선교전략 나눌터
대담 / 박기영 편집고문
정리 / 윤은주
▶북한에 관련된 기본적인 이해가 별로 없다. 개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에는 소위‘김일성- 김정일 헌법’이 있다는데?
▷1948년 9월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최초의 헌법을 채택하여‘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2012년까지 11회의 헌법개정과 명칭 변경을 통해‘김일성 -김정일’헌법으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는 정치가 법에 우선한다. 헌법은 당 강령에 기초하여 구성되며 작용한다. 북한에서는‘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 김일성,김정일주의’만이 유일한 당의 지도이념이라고 말한다.
▶주체사상의 역사적 발전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북한은 1950년대까지는 맑스-레닌주의를 따르다가 1970년 11월 노동당 대회와 1980년 10월 당대회를 거쳐 주체사상이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자리 메김했다. 199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주체사상은“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 정의하였다.
▶주체사상’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중 하나가 소위‘주체사상’인데 김일성이 시작하였고 김정일 때에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으로 망명하였다가 지금은 고인이 된 황장엽 씨가 이론을 체계화 했다. 한마디로 북한의 최고 통치와 유일한 지도이념이다. 주체사상의 귀결점은 결국‘수령의 완전한 통치를 용인’하는 것이다.
▶북한 집권층의 혈통은 마치 신라왕조의 성골인‘백두혈통’진골 같은‘빨치산 혈통’으로 주민들에게 불려지고 있는 것은?
▷‘백두혈통’은 소위 북한왕조의 원조격인 김일성을 비롯 무소불위 1인 독재기반을 다진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후계 체제를 구축하였다. ‘백두 혈통’이란 인민들에게 3대 세습의 정당 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빨치산 혈통’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김책을 비롯 충성심이 강한 소위 혁명가문의 자제들을 일컫는 말이다. 장성택 처형 후 공식 제2인자의 자리에 오른 총정치국장 최용해는 전인민무력부장 최현으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아들이다.
▶북한은 문화 예술분야 활동을 통해 소위‘음악정치’를 하고 있다는데?
▷북한에서는 음악은 주민들에게 사상을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도구중에 하나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문화예술 특히 음악의 공연을 통해 근로현장에서 집단을 하나로 묶어 일체감을 줄 수 있는 행사로 쓰인다. 모든 예술 활동에는‘수령의 유일한 영도력’을 따르는 주체의 당교시와 노선을 침투시키는 내용이어야 한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것도 모란봉악단 공연 때였다.

▶북한은 1990년대 중대한 식량난이 최고조일때에도 민중봉기 같은 대중운동으로 왜 힘을 모을 수 없었나?
▷북한은‘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정치 특성상 민중의 집단화는 구조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 정치범 수용소, 연좌제(죄지은 사람의 자손 3-4대를 멸문지화 시키는 것), 공개처형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예를들면 1956년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을 축출하고자 시도하였던 ‘종파사건’으로 사전에 누설되어 소위’연안파’와‘소련파’가 대대적으로 숙청된 적이 있다. 김일성은 당권을 장악한후 1인 독재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장성택 처형사건과 연관된 자들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북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많은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 예상되는 내용들이 알려지고 있다. 장성택 같은 빛을 누렸던 권력자가 아직까지 없었다. 북한의 제2인자가 허물어지면서 불안한 정세, 변화의 시작이 가까워진 상황이라고 본다. 권력구조안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지기를 희망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갖고 있다.
▶한국내 많은 대학에 북한학과 내지는 통일관련 연구원이 많다고 들었는데…….
▷통일을 전재로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북한학과를 세워서 북한에 관한연구가 활발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심도있게 연구해야 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탈북동포들이 이 일에 동참 할 수 있어서 순기능과 역기능의 조화를 통해서 국가안보 내지는 통일을 위한 인재들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
▶‘탈북자’라는 어휘가 적절한 표현인가? 한국과 미국에 탈북인들이 몇 명 정도 살고 있는가?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국 내에는 약3만 명, 미국에는 약 400명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북한이탈주민’,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또한 미국에서는 북한 인권법이 제정된 후 탈북자라는 용어 대신 ‘북한난민자’라고도 부른다. 그렇지만 정작 탈북자들은 그리 환영하지 않는것 같다. ‘탈북인’, ‘탈북동포’가 보편화된 표현으로 무난할 것 같다.
▶1994년에 북한의 명문대학 졸업 후, 탈북하여 미주지역 탈북동포 목사1호까지 되었다. 탈북동기와 크리스천이 되기까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 신상 얘기는 너무 조심스럽다. 그동안 많은 언론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사양했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내 자랑이 될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비판하지 말라”는 주의 말씀에 내가 비판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 한마디로 탈북동기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긋지긋한 증오 때문이다. 내가 29살이던 1997년 탈북을 결심하고 대학 졸업장을 품에 품고 두만강을 헤엄쳐 나와 중국의 조선족 농가에서 지냈다. 그 당시는 한국사람도, 탈북자들도많지 않아 갈 바를 알지 못했다. 이 때 영향력 있는 두 분의 장로님이 한국에서 찾아오셔서 많은 힘을 얻었다. 평생 처음으로 아가페 큰글성경을 받았다. 이 만남 동안에도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만이 나왔다. 그러나 성경을 받은 이후 혼자서 신구약을 힘들지 않게 읽어 내려가는 중에 완전히 성경말씀에 빠져 들어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개인적인 신앙이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교회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본질은 알지 못했다.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하나님을 아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할렐루야! 저를 찾아오신 장로님 중에 한분이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오셨다. 중국에 있는 연길교회 다니시는 60대 후반 집사님댁에서 보호받게 해 주셨다. 그렇게 중국생활 4년동안 중국문화와 중국어를 배우며 운전면허증도 취득했다. 4년의 중국생활 동안 한국에서 기독교 출판사를 30년 운영하시던 장로님께서 많은 기독교 서적과 여러 종류의 신앙책을 주셨다.이 책들은 신앙생활을 다져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로님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특례입학으로 장신대에 들어가서 신학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신학대학 다니면서 교육전도사로 사역도 하였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대학 졸업장을 가슴에 품고 두만강을 건넜다는데 그 졸업장은 어디에 있는가?
▷대학에서는 이과계통을 공부하였다. 학교명과 전공과목을 실명으로 밝힐 수 없음이 실로 유감이다. 갖고 나온 대학졸업장은 나의 실체요 나의 실존의 가치로 생각했다. 국정원의 조사과정 가운데“지금까지 모 대학을 나온 사람은 몇 명 있지만 이렇게 졸업장을 가지고 온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고 들었다. 대한민국에 들어올 때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있는 나라의 어떠한 문서도 소지하고 입국할 수 없는데 나는 졸업장을 갖고 들어왔다.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안기부 특별조치로 졸업장을 국가 서류로 규정, 국가가 보관하게 되었다. 특별하게 좋은 집안이 아니었지만 명문대학에 입학한 일, 졸업장이 국가서류로 분리되는…세상 말로는 운이 좋았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부터 전적으로 간섭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히 간증한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며 아침에 일어나 주님께 감사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님의 종의 길을가고 있다.
▶미국유학을 와서 어느 신학교에서 수학 하였으며 관심있는 신학분야는?
▷탈북동포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미국유학하여 동기들의 많은 도움으로 어려운 신학공부를 잘 감당하였다. 리버티 신학대학원 신학석사를 거쳐 플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과정중에 논문을 준비중이다. 특히 조직신학에 흥미를 갖고 있고 설교에 대한 고민과 연구을 하고 있다. 설교의 텍스트는 예수님 사역중심, 4복음서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신학분야는 몰트만의 ‘희망신학’이다. 선교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북한상황을 가장 잘 알고있는 탈북동포들이 북한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지도자 훈련시키는 것을 가치있는 일로 보고 감당 하고 싶다.
▶현대신학에서 몰트만의‘희망신학’은 어떤 하나님으로 보고 있는가?
▷‘희망신학’에서는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요,’희망의 하나님’이다. 죄와 죽음이 다스리는 현실에서 정의와 자유가 있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해방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곧‘엑소더스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이다. 믿는다는 것 곧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것이다. 이는 곧 희망을 의미한다. 인간이 곧 유일신이 되어버린 북한땅에‘해방과 희망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타문화권 입장에서 북한문화 이해 해야
▶효율적인 북한선교는 무엇이며, 북한선교을 위한 탈북동포들의 활용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교회와 미주이민한인교회가 곁에 와있는 북한주민(탈북동포)을 먼저 복음화 시키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이것이 북한선교의 첨병이다. 한국에는 약3만명, 미국에는 400명정도,영국과 캐나다,또 해외에 흩어져 있는 탈북 다아스포라가 많이 있다. 전부를 합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은 북한선교을 위한 귀한 자산이다.
탈북동포를 구제대상자 아닌 사역의 파트너요 동역자라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200여 종족중 가장 차이 많은 종족이 남한과 북한. 왜냐면 사회의 구조적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많기 때문
첫째, 탈북동포들을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제대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의 파트너요 동역자라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둘째, 탈북동포들은 정체성과 자존심이강하다. 남한과 북한은 한종족이지만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선교의 방법처럼 타문화권 입장에서 북한의 문화를 이해 해야한다. 지구촌에 200여개가 넘는 종족이 살고 있지만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종족이 남한과 북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사회의 구조적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선교라는 미명하에 북한정권을 돕는 일은 너무도 큰 과오를 범하는 일이다.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으면 비판이 될 수 있다. 작금의 북한선교는 북한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북한주민을 상대로 여러가지 물량적 지원, 금전과 약품, 기타지원이라는 명목으로 하고 있다. 나름대로 귀한일 일수 있다. 그러나 80-90%는 의도와는 무관하다. 10% 전달된다고 가정한다면 전용 않될것은 아무것도 없다. 많은 교계와 단체들이 공명심과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무분별한 북한선교 경쟁시대에 와있는 느낌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예’라고 진실되게 답변할 수 있을때에 해야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주민을 상대로 한 구제와 선교가 얼마나 효율성이 있나? 결국은 북한정권을 돕는 일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넷째, 탈북동포들을 차별화시켜 탈북동포들속에서 전도자의 사역자로 만들어 현지 전도자로 활용화 해야한다. 한국내에 5만여 교회가 있다. 탈북동포 신학생들이 1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사역훈련 받을 곳이 거의 없다. 탈북동포로 신학교 졸업생인 사람 몇십명 있어도 한국교회들의 냉담한 현실이 가슴 아프다. 사람을 키우는 교회라고 말만하지 말고 가까이 와있는 탈북동포들을 참 크리스천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가치있는 북한선교의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 와있는 탈북동포를 위한 미주이민한인교회들의 역할에 거는 기대는?
▷미주이민한인교회들도 미자립교회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선교차원에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탈북동포들에게 언어교육과 직업 교육을 통해서 미국생활의 정착에 협력하는 길이 있다. 둘째, 탈북동포자녀들의 학교교육, 특기교육, 에프터스쿨을 통해 개교회나 교계차원에서 몇교회가 협력하여 일종의 재능기부형식으로 봉사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셋째, 미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채널을 통해서 예를 들면‘난민지위’같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신분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활동과 스폰서가 되어주는 길이 있다. 넷째, 미주이민한인교회에서 잘 훈련된 평신도 탈북동포들 중에서 소명을 받은자로 신학교육을 잘 시키고 양육하여 사명자로 활용하는 길이있다. 가능하면 한국에서 신학교 교육을 마친 사명자로 유학과 연수의 길을 열어주어 북한선교을 위한 전진기지의 글로벌 지도자로 훈련 시켜 활용하는 길이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램은?
▷앞에서 언급한 미주이민한인교회들에게 거는 큰 4가지의 길이 열렸으면 한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이민한인교회를 같이 섬기며 북한선교를 위한 작은 밀알이 되길 소원한다. 북한선교학 강의를 오래 준비하여 강의하고 있다. 언제든지 교회 크기와 모임의 숫자에 상관없이 요청하면 달려갈 수 있는 주의 종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이메일은 msk21033@gmail.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