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비클과 IHOP의 위험 요소 분석(하)

정이철 목사 | 기사입력 2011/01/15 [14:04]

마이크 비클과 IHOP의 위험 요소 분석(하)

정이철 목사 | 입력 : 2011/01/15 [14:04]
3. IHOP의 중요사역과 신사도운동
 
이제 IHOP의 중요한 사역들과 신사도운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마이크 비클은 가급적 IHOP의 중요한 사역들과 용어들 속에서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일견하면 IHOP은 신사도운동과 무관한 것 같고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1)사도적 리더쉽
 
사도라는 말은 신사도운동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용어이다. IHOP과 관련된 논란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사도”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새로이 등장한 사도의 계시에 근거하여 현재의 기독교의 구조를 개혁하려는 운동이 신사도운동인데, IHOP에서도 그런 사도직 소명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한인교회의 목회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 일은 엄청난 충격과 파란을 일으키면서 2010년의 여름을 더욱 무덥게 하였다. 논란의 원인이 되었던 안민성 목사의 설교를 http://www.nypc.net/?mid=sermonwed&document_srl=12238 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후에 이 문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 예언의 진정한 내용이 “사도”였느나 “사도적”이었느냐 ... 논쟁이 더 치열해졌다. 왜냐하면 마이크 비클이 IHOP은 명사로서의 “사도”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사도적”인 리더쉽을 육성한다고 하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한인 신문에 실었고, 그 목사님의 퇴진을 반대하는 분들이 그 기사를 100% 활용하면서 “사도”가 아니라 “사도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전혀 아니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마이크 비클이 당시에 한 한인 신문에 내 보낸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다. 마이크 비클 목사가 직접 이야기하는 ‘아이합’, 기독교일보 2010년 8월 9일,
    http://www.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12185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IHOP에서 자주 기도하고, 그곳의 선지자들에게서 직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을 직접 받으신 분은 분명히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그것이 개인에게만 대단한 일이 아니라 교회도 들림을 받아서 함께 크게 쓰임을 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교회에도 엄청난 일이라고 설교를 하셨다. 그래서 그 큰 소란이 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IHOP의 마이크 비클은 “사도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사도적인 리더를 키우는 일을 한다! ... 라면서 그 일이 IHOP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마치 그런 예언을 잘못 오해해서 받은 그 한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비겁하게 발을 빼버렸다.
 
그리고 이후에 IHOP은 약간의 반전효과를 누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 “사도가 아니라 사도적인 사역을 추구하고 사도적인 리더쉽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이단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구심과 동정론이 어느 정도 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말장난이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를 역사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든 교회들이 사도적이다. 사도들의 본을 보인 믿음을 그대로 배우고 따르는 이 시대의 성도들이 다 사도적인 성도들이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정신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믿음의 교과서로 채택하여 시행하는 모든 훈련과 선교와 배움이 다 사도적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이 갑자기 “사도적”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 세웠음으로 좀 혼동하고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우리들은 사도적이지 못하고 사도적인 것을 욕심내지도 못하는데, 저들은 대범하게 사도적인 것을 추구하고 누리고 있으니 IHOP의 신앙이 우리 교회의 신앙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앞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그럴 일이 아니다. IHOP이 정말 사도적인 사역을 추구하고 사도적인 인물을 키우는데 헌신되어 있다면, 그곳에서 감동을 받고 그곳에 자주 드나드는 목회자와 성도로 인하여 우리 보통의 일반 사도적 교회들이 피해를 당하고 소란과 분쟁을 경험할 일이 없다. 그런 현상은 불건전한 집회에 참석하여 감동받고 온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IHOP에 갔다가 온 사람들 중 일부는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숨이 가쁘도록 말을 잇는다. 그런 일은 이상한 곳에 가서 은혜(?)를 맛본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IHOP 때문에 일반 사도적 교회들에게 피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IHOP이 어떤 불건전한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사도적”인 것으로 둔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IHOP 때문에 경험하는 광범위한 소란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매우 고심하면서 쓴 글이 아멘넷에 연재되어 있는 “IHOP의 신사도운동: 사도적 리더쉽”이라는 글이다. “사도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심하면서 쓴 글이니 그 내용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1)사도적이란 말의 핵심을 놓쳤다
간략하게 다시 요약하면, 마이크 비클은 사도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삶과 사역에서 찾지 않는다. 그리고 다만 사도들이 그 핵심을 추구하면서 보여준 삶과 사역의 주변적인 요소들을 사도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도들은 부지런했고, 헌신적이었고, 핍박을 견디었고, 전도와 세계 선교에 인생과 사역의 초점을 맞추었고,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대로 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그런 삶을 살았느냐? 이것이 더 본질이다.
 
사도들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선포로 인하여 탄생하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므로 사도적이라는 말은 곧 “피 묻은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오직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목양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와 일치시켜 하나의 몸으로 세우는 것”이 사도적이라는 말의 참 뜻이다.
 
성령의 이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적인 사역의 본질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사상과 가르침과 사역의 진실성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확증하시는 증거였다. 사도들의 사역을 촉진시키기 위해 성령께서 돕는 사역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신사도운동가들은 무의미한 기적, 방언, 환상 등이 사도적인 사역의 증거라고 한다. 금이빨을 만들고, 방언이 터지고, 금가루가 휘날리고, 구르고, 뛰고, 히죽거리고 ... 이런 것이 사도적인 목회의 증거이겠는가?
사도적인 사역이란 2000년 전에 세상 떠난 사도들이 마치 지금 나타나서 다시 목회를 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도록 사도적인 그 정신과 원리를 그대로 이어서 사역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성령의 능력의 도움을 받아 생생하게 살아서 선포되고 바르게 적용되는 것이 사도적인 사역의 가장 핵심이어야 한다.
 
IHOP에서 이러한 일을 잘 하면서 사도적인 사역을 하고 사도적인 리더를 육성하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성경을 중시하고 바르게 가르쳐왔다면 아무도 IHOP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IHOP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수 많은 성경구절들이 IHOP의 사역들과 마이크 비클의 글에서 난무하지만, 제대로 바르게 자리를 잡은 경우는 별로 없다.
 
사도들이 다시 IHOP에 가보면 혀를 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보자! 24/7 중보예배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24시간 기도하라!” ... 이런 말을 듣고 지금 그러고 있다. 성령이 임하여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법궤이고,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삶의 제사를 드릴 존귀한 제사장들인 우리 성도들을 나무 법궤에 계신 하나님을 섬긴 3000년 전의 제사장들의 사역을 배우게 하고 있다. 그 제사장들처럼 24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을 성질 급한 베드로 사도가 보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제일 마음이 온유하고 사랑이 많았던 요한 사도라고 해도 결코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IHOP은 이제 더 이상 사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성명서를 낼 때에 서명하지 않을 진짜 사도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모든 교회들은 사도적 리더쉽 아래 있으라 한다
IHOP의 한국지부의 홈 페이지에의 IHOP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다음의 내용이 극히 강조되고 있다. “IHOP은 각 지역 교회들을 존중한다. IHOP은 지역 교회에 근거를 두고 있다. IHOP이 지역교회의 대체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기도의 집과 선교 본부는 반드시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과 사도적 리더쉽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모든 기도의 집과 선교 본부는 반드시 그 지역에 있는 사도적 리더쉽 아래 있어야 한다.” IHOP 한국지부의 홈 페이지(http://ihopkorea.com/)의 “소개” 페이지를 보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2000년 전의 초대교회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일까? 그 당시에는  자체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성도의 가옥을 중심으로 모이는 작은 교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의 집에 있는 교회”(롬 16:5, 고전 16:19, 골 4:15)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 교회들을 인도하는 사람은 주로 그 가정의 가장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뚜렷하게 일치된 호칭은 당시에 없었지만, 그들은 오늘 날의 목사의 역할을 감당했던 특별한 성도들이었다. 그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사도적 권위 아래에 있었었다. 사도들의 편지와 가르침이 그들의 목양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하여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목양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받고 있었다. 때로는 사도가 어떤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모든 성도들을 한 곳에 모아 직접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다(행 20:9). 그 당시의 교회들과 교회들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사도적 리더쉽의 영향 아래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사도들이 성경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달라졌다.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 근거하여 세워지는 장로(감독)와 집사가 각 지역 교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도적 리더쉽에 종속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사도들이 남긴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다만 교회간의 일치와 이단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오늘 날의 교단과 노회제도에 해당되는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이러한 원리와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사도”나 “사도적”인 사람이 다시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권위와 영향력 아래에 교회들이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신사도운동가들이다. “사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자들은 막가는 신사도 매파들이고, “사도적”이라고 약간 돌려서 말하는 자들은 부드러운 비둘파들이다. 마이크 비클은 비둘기파인 셈이다. 어쩌면 정체를 감추는 노련한 여우일 것이다. 이제 사도들의 우산은 없다. 오직 성경의 우산이 있을 뿐이다.  
 
2)선지자와 예언
 
IHOP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사안이 그곳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이다. 신사도운동에서 가장 중심적인 일들은 사도와 연관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선지자이다. IHOP은 사도에 관해서는 “사도적”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비켜가겠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선지자에 대해서는 정직하고 담대하다. 선지자와 그들의 예언과는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 부끄러움도, 문제도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80년대 초부터 마이크 비클의 교회에 선지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한 신문은 IHOP에 대한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In the late 1980s and early '90s, when his Kansas City Fellowship church was home to the Kansas City Prophets, a group of men whose claims of visions from God still stir controversy worldwide”(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KCF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꿈과 비젼을 받음으로 세계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게 한 선지자들의 집이었던 그 당시에). The Pitch, http://www.pitch.com/2002-10-10/news/return-of-the-prophets/#
 
IHOP이 사도적 리더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약간 후퇴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도성의 핵심은 성경을 강조하지 않고 결국 사람을 말하고 있으니 신사도운동의 사도사상과 일치한다. 그것이 IHOP이 신사도운동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도 마찬가지이다. 피터 와그너는 90년대에 사도보다 조금 일찍 출현한 선지자들의 예언운동이 중보기도 운동과 더불어 사도직을 출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일으키신 운동이었다고 했다. Peter Wagner, Apostles Today, (Ventura, CA: Regal Books, 2006), p.14.
 
이는 선지자들의 예언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선지자라는 호칭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증상이고, 그들의 예언이라는 것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IHOP이 선지자라는 용어를 다른 경우처럼 “선지자적”이라고 돌려 말하지도 않고 그대로 “선지자”라고 하는 자체가 이미 IHOP이 신사도운동 단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성도들의 귀에 은밀히 들려지는 예언들은 신사도운동을 확산하는 바람이다.
 
(1)지금 선지자는 없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지자와 예언이 오늘 날의 기독교 안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러면 신사도운동과 그 사상 위에 서 있는 IHOP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의 허구와 거짓됨이 명백해 진다. 선지자와 예언을 지금도 주장하는 분들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등에 선지자라는 호칭(행 15:32, 21:10, 고전 12:28, 엡 4:11)이 있고, 예언도 권장(고전 14:1, 14:39)되었다는 것을 주장하신다. 성경에 나왔으니 지금도 그대로 인정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논의하는 것은 매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이 점에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IHOP의 신사도운동: 선지자들”이라는 글에서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신문 “아멘넷”(usaamen.net)의 칼럼공간에 연재되어 있다.

 그러나 간략하게 다시 한 번 요약하여 보겠다.
선지자와 예언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한 사도는 바울이다. 그래서 선지자와 예언이 오늘 날에도 여전하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위에서 바울 사도가 말한 위의 성경구절들을 줄기차게 제시하면서 마치 대질심문하듯이 따지신다. 그런데 그 분들이 무시하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다. 사도시대 이후 신약 교회의 직분제도에서 선지자와 선지자의 예언의 자리를 종결시켜 버린 사람도 바로 바울사도라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신약 교회의 직분의 골격과 원리를 자신의 두 직계 후배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명시하였다.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이다. 여기에 선지자나 선지자의 예언이나 사도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바울이 언급한 “장로”와 “감독”은 같은 직분이었다. 에베소서 4:11절의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의해서 사람에게 직접 주어진 것과는 달리 이들은 지역교회에서 훈련되어 목회자의 성도들에 의해서 선출되었다. Homer A, Kent, Jr., The Pastoral Epistles, (Winona Lake, Indiana: BMH Books, 1986), p.117.

 바울은 이들을 선출하는데 어떤 신앙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장로와 감독 사이에는 어떠한 기능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사도행전 20:17-28절과 디도서 1:5-7절이다. 이 본문에서 장로와 감독이라는 단어가 교차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Ibid.
 
바울이 말한 감독이 오늘 감리교회나 성공회의 감독(Bishop)은 아니다. 바울이 성경을 기록 할 때에는 감독이라는 호칭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다른 지역 교회들과 목회자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상위 계급으로서의 감독은 A.D 110년 무렵에 시리아 안디옥에서 처음 등장했다. John R. W. Stott, The Message of 1 Timothy & Titus, (Downers, IL: IVP, 1996), p.90.
 감독(장로)과 집사, 이 두 가지 직분만으로 시작한 초대교회의 직분제도는 2세기부터 집사와 장로(감목), 그리고 다른 장로들과 감독들을 다스리는 특별한 감독(Bishop), 이렇게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는 데에는 이후 많은 시간이 더 걸렸다. 이렇게 완성된 성경과 함께 신약 교회의 다스림과 직분의 체계가 발전되면서 에베소서 4:11절의 사도와 선지자는 종결되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교회의 조직과 질서의 체계를 이야기할 때에 반드시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서 출발해야 한다. 절대로 다시 에베소서 4:11절로 돌아가서 사도, 선지자, 목사, 교사, 복음전하는 자의 시스탬을 원시 오중직의 형태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2)초대교회의 예언은 양육하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언은 미래의 비밀을 푸는 말씀이 아니었다. 그런 내용도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예언은 성도를 양육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였다. 그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성경말씀이 사도행전 15:32절의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이다. 그 당시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돕기 위해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위로, 권면, 책망, 회개의 요청 ...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결국 성경과 성경의 내용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설교와 성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다양한 형태의 말씀사역을 임시적으로 대행한 것이 초대교회의 선지자의 예언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나 다른 선지자들이나 예언이 성경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 다른 성경에서 선지자나 예언을 언급했음에도 교회의 직분제도의 골격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선지자와 사도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실수였을까? 이런 중대한 일에 사도가 실수하도록 방치하여 두었을까?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후에 자연스럽게 사도와 선지자가 교회사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다시 사도와 선지자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예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사도운동가들과 IHOP은 진리의 시대적인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중심으로 믿어야 하고,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늘 기도하고, 오직 성경 안에서만 만족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신앙생활의 원리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이 원리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로 인하여 위험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신앙을 훼손하지 않고 전달하여 준 믿음의 선조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고 육신의 부패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고 위로하기 위하여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히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드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1항).
 
이뿐이 아니다. 벨직 신앙고백의 교회의 유지와 교회의 제도와 직분을 언급하는 제 30조와 제 31조에도 사도나 선지자나, 예언이나 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없다. “목사들과 함께 교회의 제직회를 구성할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벨직신앙고백서 제 30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역자들과 장로와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구하며 질서에 따라 교회의 정당한 선거로서 각기의 직무에 피택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다”(벨직 신앙고백서 제 31조).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우리의 믿음과 구원과 교회의 질서를 위한 모든 것이 이 다 완비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를 위한 새로운 계시나 직분은 저기 천국에 가서나 찾아보고 여기서는 성경과 함께 이대로 재림까지 가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신사도운동은 “개혁”이라는 깃발을 흔들면서 다시 사도와 선지자를 찾아내고, 계시와 예언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서 완성하신 복음을 기록한 성경의 완전함을 부정하는 음모이다. 만일 지금 신사도운동을 인정하고 사도와 선지자들이 받는 계시와 예언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다음은 어찌 될까? “오직 성경!”이 무너지면, 도처에서 선지자 무당들과 신령한 사도들이 준동하여 다시 교회 오기가 싫어지게 할 것이다. 그것이 사탄이 바라는 최종목표가 아닐까? IHOP의 선지자라는 호칭자체부터 거절해야 한다. 그곳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적질서에 의해서 생겨난 하나님의 일꾼들이 결코 아니다.
 
(3)요즘 선지자들의 예언이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한다
또한 요즘의 선지자와 그들의 예언이 실질적으로 성도들의 삶과 신앙에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성도들이 그들의 예언을 통하여 유익을 얻고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많다면 또 우리는 생각을 조금 달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열매이기 때문이다. 열매보다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없다고 하셨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그 곳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많다면 그들을 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해야 할 것이고, 열매가 나쁘다면 더욱 더 경계해야만 한다.
 
IHOP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민성목사와 연관된 그 선지자들의 예언이다. http://www.nypc.net/?mid=sermonwed&document_srl=12238 에서 IHOP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내용이 언급된 안민성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
 
 그 일로 아직까지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이나, 그 일만큼 IHOP의 선지자의 예언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그래서 또 언급하니 양해를 바란다. 결국 지나고 보니 일고의 가치가 없는 거짓된 예언 그 자체였다. 그렇게 민감했던 용어와 관련된 신경전, “사도”이건 “사도적”이건 간에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보내셔서 새로운 Movement를 감당하게 하겠다던 그 신비한 두 천사는 어디로 여행이라도 갔는지 그 뒤로 아무 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후에 일이난 일이라고는 그 예언 때문에 더욱 소란이 일고, 그 목사님께서도 마음  고생을 죽도록 하시고 끝내 교회를 사임하고 떠나신 것이 전부이다.
 
이 일에 대해서 IHOP측이 무슨 책임감을 느끼는 시늉이라도 했었던가?  무슨 납득이 갈 만한 해명이 이었던가? 그저 한 일이라고는 이런 자신들의 예언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한인 신문에 내 보낸 것이었다.
 
“1)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존중하는 가운데 예언을 받아야 한다.
2) 우리 삶에 새로운 방향을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 대신 주께서 주신 방향에 대한 확신을 주는 예언을 해야 한다.
3) 지역 교회와 영적인 권위, 그리고 큰 주의 몸을 섬기는 바탕 위에서 예언 사역을 받아야만 한다.
4) 예언의 영은 예수님의 간증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들을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더욱 크게 순종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지상대명령을 위해 더욱 열심을 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마이크 비클 목사가 직접 이야기하는 ‘아이합’”, 기독일보 2010년 8월 9일,
     http://www.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12185
 
IHOP의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인하여 한 목회자가 심각한 혼선을 경험하면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당하고 있을 때에, 이런 변명인지 바램인지 잘 모를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존중하는”, “주께서 주신 방향에 대한 확신”, “주의 몸을 섬기는 바탕 위에서”,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더욱 크게 순종할 수 있도록” 이런 좋은 말과 그 목회자가 받은 사도직에 관한 예언의 내용과 그 파장이 어디 얼마나 일치했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았다.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교회와 그 당사자가 피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참 딱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실정일지라도 “아직 기도가 부족하여!”, “완악한 사람들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이 중도에 뜻을 바꾸셔서!” ... 이런 변명 몇 가지면 유야무야되는 것이 또 이런 종류의 일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IHOP의 선지자의 예언뿐 아니라 그 누구의 예언도 다 그렇다. 그 순간에는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고 계시인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맞았다! 하는 경우도 대개 유리하게 갖다 붙이는 경우이다. 지난 번 오워의 “회개의 전쟁” 사건이 그 대표적인 증거이다. 미사일, 로켓포, 발전소, 항공모함 ... 곧 엄청난 사변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 휴전선에서 몇 발의 총성이 들리자 그것이 예언의 성취라고 그의 홈 페이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래 지나 연평도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때는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다. 오워의 잘 맞았다는 지난 예언들도 다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안 보아도 빤하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빌 해몬이라는 또 다른 유명한 미국 선지자는 2010년 7월에 한국에 방문하여 “한국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워가 )다른 데서 한 예언이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근자에 절대로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내 속의 예언의 영이 말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2010년  7월 초,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CI코리아 주최” 개최된 콘퍼런스에서 빌 해몬이 한 말이다.
    http://sk8404.or.kr/welcome/skin/board/mw.basic/mw.proc/mw.print.php?bo_table=03_11&wr_id=341
라고 말했다고 한다. 왜 같은 선지자인데 한쪽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다른 한쪽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예언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들의 예언이라는 것을 귀 담아 듣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만 바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이라서 믿음으로 들었는데, 안 맞아서 삶이 망가지고 손해를 본다면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말을 예언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신 18:22).
 
더 놀라운 일은 최고 수준의 선지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예언의 부정확성을 공공연히 미리 말한다는 사실이다. 종종 IHOP에서도 집회를 인도하는 릭 조이너도 정상급 선지자이다. 그래서 손기철 장로도 두 번이나 기도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도 미리 빠저 나갈 길을 다 열어 놓고 예언하는 비겁한 선지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도 중대하고 구체적인 예언에 관해서는 100%의 적중률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내게 예언자의 호칭이 걸맞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이들이 그 수준에 이르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예언적인 계시를 받고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100% 정확성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릭 조이너,『예언사역』조성국 역(서울: 은혜출판사, 2009), pp.27.
  
예언이라는 것이 훈련과 연습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릭 조이너의 말이 타당하다. 그러나 스스로 주장하기를 선지자라는 직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라고 한다. 신학교의 훈련을 거쳐서 탄생하는 목회자와는 다르다. 그들의 말대로 계시가 없어서 선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목사야 성경만 잘 붙들면 되니 소명과 훈련이면 된다. 초대교회 때부터 목회자(장로,감독)는 한 번도 직통계시를 추구하지 않고 항상 성경만 붙들었다.   
 
성경과 목사만으로는 온전치 못하다고 하면서 직통으로 계시를 받고 예언을 받는 사도와 선지자를 내놓은 것이 신사도운동이다. 그러면 적어도 사도의 계시와 선지자의 예언은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선지자 중에서도 대표적인 선지자가 자신의 예언이 다 맞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는 진정한 겸손일까? 아니면 연막일까? 90%가 맞는 예언이고 10%가 틀린 예언이라고 치자! 그것도 대단하다고 치자! 그런데 10%에 해당하는 예언이 한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한 가정을 망치고, 한 인생을 파괴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위험성이다. 밥 존스, 폴 케인 등 누구를 막론하고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의 예언 중 틀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틀린 예언을 조사하기 보다는 정말 맞는 예언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미 듣고 속을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준비하고 들어주는 것이 그들의 예언이다.

(4)어니 그루웬 리포트에 나타난 캔자스시티 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들
다음은 어느 그루엔 리포트에 나타난 대표 선지자들의 예언의 허구성에 관한 내용들이다. 
“환상에서 벗어난 100여 명의 과거와 현재의 KCF 신자들과 상담을 해야 했던 캔자스시티의 한 크리스천 심리학자는 진술한다. “내담자들과 지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에게 예언이 주어졌을 때 성취된 예언은 단 하나도 없었다 ... 나는 선지자들과 기타 KCF의 사람들에 의해서 예언이 주어진 내담자들을 만나 왔다. 고뇌의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그 후)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그들의 고뇌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가시켰다. 자살적 내담자는, 사실, 더욱 자살적이 되었고 심지어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자 성취부족을 자신들의 탓이라고 여기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이 캔자스시티 선지자(대언자)들의 문제인가?” 어니 그루엔 리포트,
     http://blog.naver.com/yoochinw/130040323689

“그럼에도 밥 존스는 ‘내가 보기에 예언의 삼분의 이를 맞추면, 나는 꽤 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인용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100%의 레마(rhema)를 풀어 놓으면 그에 대한 책임이 굉장할 것이며 아나니아들과 삽비라들이 너무 많은 생기는 나머지 사람들은 성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너무나 두려워할 것이다’하지만 그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것(예언)이 목표에 명중하면, 이는 사람들을 두렵게하여 회개토록 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자 마이크 비클은 격려한다. ‘이제 삼분의 이입니다. 밥이 처음 이것을 얘기했을 때 나는 삼분의 이(나)!’라고 말했습니다. 밥 존스는 말하기를 ‘응. 그건 지금까지의 어느 때보다도 좋은 숫자야. 어느 때보다도 가장 높은 수준이야!’라고 했습니다.” Ibid.

최고의 선지자가 밥 존스가 자기의 예언의 정확성이 2/3만 되어도 만족하겠다고 한다. 누구나 예언하면 맞을 가능성이 50%라는데, 최고의 선지자라서 조금 높다고 그것이 다행인가? 그냥 정직하게 “막연히 느낌대로, 그리고 뭔가가 시키는 대로 무책임하게 내 뱉습니다!” ... 라고 하면 좋으련만, 그들은 그렇게 정직하지도 않다. 다음은 또 다른 선지자가 한 개인에게 곧 불행이 닥친다고 했던 거짓예언의 사례이다.
 
“3. 뇌졸중이 곧 온다는 예언을 받은 사람
우리는 개인 예언 분야에서 경험을 가지고 있다. (CCF교회가) KCF에게 인수되기 바로 전 CCF에서 존 폴 잭슨과의 미팅이 있었다. 교회 리더들과 아내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불렀다. 그는 우리 하나하나에게 개인 예언을 말했다. 그는 내가 흉통에 시달려 왔다고 예언하며(내게는 흉통이 있었다), 만약 몸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일 년 내에 뇌졸중이 와서 불수가 된다고 했다. 존 폴은 내 심장에 이미 영구적인 손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과체중이었기 때문에 이런류의 일은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매우 무섭고 놀라운 예언이었다. 우리는 매우 화가 났다.
 
우리는 결국 이 예언을, [우리와 우리의 연로하신 목사께서 예수 이름으로 반대하는] 저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예언이 참되었다면, 교회로 하여금 이것에 대항하고 체중을 줄일 수 있게 기도하도록 했으면 좋았을 터이지만,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를 찾아 갔는데,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 의사는 내가 그가 만난 가장 건강한 살찐 사람 중 하나라고 알려 주었다. 흉통은 스트레스와 연관된 것으로 심장과는 관련이 없었다. 내 심장에는 어떤 손상도 없었다. 이 예언이 있은 지 거의 3년이 지났다. 나는 매년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가기 전 건강검진을 받는데 항상 깨끗한 결과를 통보 받는다.” (Testimony Letter 2) “VI 선지자들과 예언 (3/3)”, 어니 그루엔 리포트, http://blog.naver.com/yoochinw/130089383806
 
이런 내용도 있다. 예언에 대해서 마이크 비클이 잠시 진실한 말을 한 적도 있었다. 
“1. 오류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이다
마이크 비클: “그래서, 비록 우리가 예언적으로 성장하기 바라지만, 주어진 모든 예언을 믿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만 개의 예언이 주어졌지만, 내 마음 속에서 주께서 주신 것으로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나머지 예언들을 준 사람들에게 화를 낼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그저 보낸다 --그냥 얹어 놓고 ... 떠내려가도록 한다 ... 왜냐하면, 과시욕이 있는 사람들, 교만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사를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은사를 완성시키시기를 요청한다.” (P.His 1, p. 5) Ibid.

예언운동을 주도하는 선지자들 스스로가 예언을 다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그 목사님처럼 선지자가 주는 예언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마음에 그 내용을 담고, 기도하고, 사역의 비젼으로 성도들과 나누기까지 한 그런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을 함부로 하면 세상에서도 사기꾼이라 매도되는데, 믿음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처벌이 없으니 괜찮다는 것일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예언의 산의 정상에 노는 선지자들부터 “내 예언은 다 맞지 않다! 나도 못 믿겠다!”라고 하면서 뿌연 탁한 물을 흘려보내다. 그러면 그 물을 일상으로 마시고 쓸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동네에 도달할 때에는 그 물은 얼마나 더 탁해질까? 마음 놓고 마시지도 못할 아주 탁한 예언의 강이 범람하게 된다.

(5)신사도운동 교회에 흔한 예언들
 
다음은 선지자학교도 운영하는 한 신사도운동 교회에 오래 다니셨던 분이 회의를 느끼고 나오면서 그 교회의 선지자들에게 받았던 예언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내용이다. 그 유명한 선지자들은 주로 나라와 교회와 목회자들을 상대로 예언을 하지만, 선지자 학교 같은 곳에서 배출된 예언자들은 일반 성도들을 상대로 예언을 하는 모양이다.
언제가 신문기사에서 그 교회에서는 예언을 받을 때에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녹음하도록 한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보았다. 성령이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반복하여 듣고 그 뜻을 새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분도 핸드폰에 녹음된 예언을 다시 글로 옮겼다고 하였으니, 거짓이나 과장은 없어 보인다.
“저는 핸드폰으로 거짓 예언을 참 예언으로 알며 녹음까지 하며 참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000 전도사의 선지자 학교와 사도 학교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에게 예언을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참으로 감동과 눈물로 눈앞을 가렸습니다. 내용이 워낙 많아 이곳에 다 올릴 순 없지만 일부 받은 내용들을 올리겠습니다.
 
(예언 1)
“안녕하세요 집사님이세요?” “아니오! 청년입니다!” “네 ... 지금 하늘에서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형제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큰 축복이 넘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형제님이 더욱 더 기도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형제님께서 예수님과 눈물로 포옹하는 장면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형제님께서 힘드시지만 더욱 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참고 기다리시면 곧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예언 2)
“지금 일곱 가지의 빛이 나는 교회가 보여지고 있는데요 ... 그 일곱 개의 교회가 형제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형제님께서 큰 사명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하나님께 기도로써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지금 엠블란스 사고 현장인데요 ... 지금 어떤 죽어가는 환자가 피를 계속 흘리고 있는데요 ... 형제님이 안수하시니까 피가 멎는 환상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물질을 계속 구하시죠? 더 구하십시요 지금 여러 나무에 열매들이 열려 있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물질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지금 자가용을 타고 있는 모습이 ... “혹시 결혼하셨나요?”, “아니오!”, “지금 여자분과 공항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앞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언 3)
“지금 커피 서빙하는 모습이 ... 혹시 커피 서빙 아르바이트 하신 적 있나요?”, “아니오”, “아 ... 지금 커피가 엎질러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앞으로 신앙 생활 하시면서 많은 위기가 찾아올 건데 ... 더욱 더 기도로서 나아가십시요!”
 
(예언 4)
“형제님이 아파트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게 아니라 껑충 껑충 한 번에 쉽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볍게 나아가실 것입니다. 형제님이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기도로서 나아가십시오!” 이 내용을 카피하여 둘 때 출처를 복사하여 두지를 못했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분들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예언에서 교회가 이 형제에게 절할 것이라는 내용은 참 황당하다.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예언을 받은 형제가 장차 교회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 어마어마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일곱은 일반적으로 완전과 전체를 상징하는 수이니, 온 세상의 모든 교회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과연 이런 예언을 받았던 이 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계실까? 큰 사명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셨을까? 아마 이런 종류의 예언은 신사도운동 교회들 속에 길의 먼지 같이 흔할 것이다. 이런 무의미한 탁한 예언의 강물이 범람하는 곳이 바로 신사도운동 교회들이다.
다음은 신사도운동 교회의 예언의 성격과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알게 해 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서울의 대표적인 신사도운동 교회의 홈 페이지에서 발견했다. 과연 이러한 내용을 성경의 선지자의 예언이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할렐루야 000 전도사님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00 큰 믿음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000목사입니다. 00에 교회가 설립된 지 어제부로 3개월째가 되었습니다. 00에 내려오기 전에 000전도사님에게 예언을 받았습니다. 예언 중에 “교회가 생긴지 3개월이 되면 50-60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 후로 급속도로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그런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래가지고 되겠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000전도사님께서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3개월째가 되는 8월 16일 주일에 예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 000전도사님께서 선포한 예언 중에 “그 이후에는 급속도로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부분을 붙잡고 기도할 것입니다. 이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예언을 붙잡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이 러브 큰 믿음교회, http://blog.daum.net/godisready/7035920
 
예언이 일상적인 영역에서 시행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세상의 점과 비슷해지게 되어 있다. 결국에는 “저는 ~ 을 어찌 해야 할까요?”, “~ 이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  ... 일상적 영역에서의 예언이 이런 것 외에 더 무엇을 하겠는가? 위의 예언이 미아리의 용한 집에서 나오는 소리와 뭐가 특별히 다른지 모르겠다. 이 개척교회의 목사님의 그 예언을 향한 태도가 미아리의 용한 집에 처음 가서 만족을 얻고 또 다음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우리 동네의 어떤 아줌마의 모습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동네 아줌마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많이 배운 해외 유학파 성도도 이런 예언에 잘 빠져들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을 들었다. 하기야 달라스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였던 잭 디어가 1987년에 캔자스시티로 가서 마이크 비클과 선지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예언을 받고서 그만 뿅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배우고 안 배우고가 중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잭 디어를 처음보는 그 선지자가 “여기서 당신을 보게 될 줄을 몰랐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잭 디어가 “우리가 안면이 있나요? 난 그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했다. 그때 그 선지자가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8일 전 당신에 관한 꿈을 꾸었지요. 꿈을 꾸다 깨어보니 새벽 3시였지만 왠지 중요한 꿈같아서 내용을 종이에 적어 놓기까지 했는걸요 ... 주님께서 당신에 관해 어떤 말씀들을 하셨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잭 디어,『놀라운 예언의 은사』박진아 역(서울: 은성,1998), pp.15-16.
 
그리고 그 선지자는 계속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군요.” Ibid., p.18.
라고 말하였다. 그 순간 잭 디어는 녹아버렸다.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아픔을 알아내는 그 선지자를 완전히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여 버렸다. “대경실색 할 노릇이었다. 논쟁의 여지없이 그는 진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진정으로 살아계신 분이었다.” Ibid., 27.
라고 그는 전율하면서 무너져갔다. 
 
나는 이런 모습을 정말 이해하지 못한다. 미혹하는 악한 영들이 특히 과거를 잘 알아맞히는 것은 동서양의 상식인데, 왜 그렇게 쉽게 빠져들었을까? 기껏 그런 예언이 달라스 신학교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구약학자 잭 디어의 영적붕괴의 계기였다니 어이가 없다. 내 고향의 아줌마들은 그런데 가기는 해도 또 그렇게 획 넘어가지도 않는다. 마음의 환기를 위한 영적인 오락정도로 생각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잊어버린다. 잭 디어는 그런 예언을 이전에 한 번도 경험을 못해보았었을까?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해서 결국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교회도 사임했다. 그리고 마이크 비클이 소개한 존 윔버와 친해져서 그와 동역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Jack Deere, Supriced by the Power of Spirit(Grand Rapid,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3), p.30ff.
 
성도들이 IHOP에 방문하여 24시간 365일의 기도와 찬양을 경험하고, 그곳에 상주하는 선지자들에게서 예언을 들어보는 것이 단순 흥밋거리나 한 번의 특이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삶과 신앙의 변질의 출발점이 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지해야 한다. 특히 감정적이고 판단력이 흐리고 마음이 여린 성도들에게서는 더욱 심각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다윗의 장막으로 영으로 24/365일 기도와 찬양
  :“Harp & Bowl Model”(중보예배)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IHOP이 하는 사역들 중에서 24시간 매일 기도하고 찬양하는 이 사역이 IHOP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의상 이것을 “24/365사역”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IHOP측에는 “24/7 중보예배”라는 표현을 선호하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1년 365일 쉬지 않고”라는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24/365가 더 친근하다.
아이합의 홈 페이지에는 IHOP을 소개하는 공간의 가장 서두에 이렇게 쓰여있다.
“끊임없는 찬양과 중보기도는 우리가 하는 가장 핵심적 사역입니다. 미국 캔사스 시에 있는 국제 기도의 집(아이합)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을 쉬지 않는 찬양과 기도, 하나님과의 친교,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 그리고 정의를 실행하는 것을 사역의 기초로 삼는 선교본부입니다.” IHOP의 한국지부 홈 페이지의 “아이합 소개”,  http://ihopkorea.com/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 곳이어서 정말 다루기가 어려운 곳이 IHOP이다. 1999년에 IHOP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인 1983년 5월 캔자스시티 선지자교회(KCF)를 개척한지 얼마 후에 기도 중에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24시간 기도사역을 세울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 기도의 용광로: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 2004, IHOP 한국지부 홈 페이지의   “자료실”( http://www.ihopkc.com/ihopkorean/Resource.php ).

 이렇게 시작된 24/365 사역이 왜 칭찬받을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가급적 간략히 설명하려고 하니, 더 자세한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은 “IHOP의 신사도운동: 24/365 기도와 찬양” 인터넷 신문 아멘넷(usaamen.net)의 정이철목사 칼럼.
을 읽으시기 바란다.
이 문제의 핵심은 24/365사역이 구약의 하나님께서 나무 법궤 속에 거하시던 시절의 제사장들이 하나님 섬김의 방식을 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이후에 강림하신 성령이 각 성도의 “몸”(고전 6:19)을 법궤로 삼으시는 시대이다. 내주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성도는 스스로 제사상이 되어 하나님께 살아있는 자신의 생명과 몸과 생활로 산제사를 집도하는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 보다 비할 수 없이 존귀한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 되었다.
 
24/365 사역은 하나님의 임재인 법궤가 한 장소에 고정 안치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을 감히 방치하지 않고 계속 찬양과 경배 속에 거하시게 하였던 구약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우리 모두의 몸속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된 나무 법궤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장소를 정하여  24/365 쉬지 않고 찬양과 기도를 이어가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발상은 전혀 복음의 정신에 합하지를 못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대한 복음의 원리이고 구속사의 진리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고 막연히 기도와 찬양이 길고 많으면 좋은 것처럼 성도들을 오도하는 곳이 IHOP이다. 복음의 정신에 합당한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을 분별 못하면서 막연하게 계속 기도하고 찬양하면 좋을 듯이 오도하는 IHOP의 사역을 우리는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일을 벌이도록 음성을 들려준 그 신(god)이 절대로 나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준 아버지 하나님(God)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사실 IHOP에서 저런 일을 벌이면 벌일수록 믿음을 망치는 사람은 더 많아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의 진리와 맞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24/365 사역을 통하여 나타나는 은사니 환상이니 감동이니 변화니 ... 이런 것들은 다 우리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온전한 선물”(약 1:17)이 아니다. 
IHOP에서 24/365 사역을 통하여 감동과 변화를 입은 성도들의 모습이 담긴 다음의 영상을 보라! 어찌 이런 모습이 아버지의 온전한 선물을 받은 성도의 모습이겠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HCXOSjBAeM8
 
마이크 비클은 지금이라도 이 느끼한 찬양과 기도 사역을 그만 두거나, 아니면 시간을 정하여서 모여 기도와 찬양을 하고 흩어지거나 ... 바른 변화를 시도하여야 한다. 그런데 도리어 이 일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24/365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한 모양인데, 요즘에는 이것이 “Harf & Bowl 중보예배”라는 Up Grade 된 버전으로 만들었다. 원래 하던 일에 요한계시록 5:8절의 이미지를 갖다가 붙인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24장로들이 “거문고”(harp)와 지상의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Golden Bowl)을 들고 있는 장면을 지상에서 미리 이루어드리고 경험한다면서 하는 일이다.
이것도 참 어이가 없다. 생명이 다하여 지상을 떠나 천국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아직 산 사람들의 지상 교회에서 이루어드린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미리 천상의 하나님의 보좌 앞의 24/365 거문고와 기도 향(Harp & Bowl 예배, 계 5:8)를 실행하면 자연적으로 그곳에서 성령의 능력이 방출되어 큰 영적 부흥을 일어난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 기도의 용광로: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 2004, IHOP 한국지부 홈 페이지의   “자료실”( http://www.ihopkc.com/ihopkorean/Resource.php ).

 그리고 또 바로 이 하프 앤 보울이 이사야 56:7절에서 예언된 “기쁨을 주는 완전히 새로운 기도”라고 한다. 내가 그 구절을 찾아보니 무슨 특별한 의미는 아니고 교회가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어야 한다는 그냥 보통의 말씀일 뿐이었다. 말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읽는 이런 재주는 어디서 왔을까?
요즘 IHOP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기도와 찬양을 교차적으로 섞어가면서 계속 끌고 나아가는 모임들이 많아지고 있다. IHOP에 갔다 온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런다고 한다. 육신을 가지고 세상사는 우리들이 여기서 하나님 섬기는 방법이 있고, 이미 죽어서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 섬기는 방법이 따로 있다. 천사의 경배와 인간의 경배가 같을 수 없고,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예배가 꼭 같은 수는 없다. 여기서는 여기 식대로 해야지 죽기도 전에 미리 다 천국식으로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나 하프니 보울이니 하면서 요란을 떨면 귀신들만 활개칠 수 있다.
 
“하프(예배 찬양)가 보울(중보기도)과 함께 이루어질 때, 영적 다이내믹을 창출한다. 하나님께서는 보좌 주위에 경배 찬양이 중보기도와 함께 교류하며 흐르도록 위임하셨다.” 이런 말이 벌써 수상하다. 하나님의 인격으로서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아니라, 어떤 신비한 기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프(찬양)와 보울(중보기도)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구름같은 신비한 뭔가가 형성되고, 그 무형의 기운이 스스로 움직이고 작동하도록 하나님이 두신 다는 것이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보는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든다. 해리포터 같은 영화가 다 그런 류의 영화이니 당연히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귀신이 이런 곳에 안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결코 마이크 비클의 24/365 사역은 건전하지 않다. 처음 시작부터 그랬고, 더 발전된 모양인 Harp & Bowl은 더욱 그렇다. 다음은 24시간 365일 계속 찬양드리는 IHOP의 기도실의 한 장면이다. 보면서 이런 곳에서 신령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겠는지 느끼기 바란다. 짧은 가사를 계속 반복하여 사람의 정신을 인위적으로 몰입시키는 특이한 요법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미혹하는 영들의 온상이라고 본다. 과연 이런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가 가능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맥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고서 기도시키는 IHOP이나, 이런 곳을 신령한 곳이라며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dCKBSB-PAE

4)신부운동
 
IHOP이 하는 일 중에 우리를 현혹하는 또 하나의 일은 신부운동이다. “신부”니 “신부운동”이니 ... 이런 개념은 원래부터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였다. 교회는 시작부터 하나님의 신부로 출발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여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신부이다.
 
마이크 비클은 우리처럼 “신부운동”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지 않고 매우 세련되게 말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탁월한 장기이다. “주님과 친밀한 신부”, “신부로서의 정체성 회복”,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의 열정”, “신랑 하나님의 계시” ... 이렇게 더 멋지게 표현하니 더 격이 달라 보인다. 마이크 비클에게는 굉장한 언어적 재능이 있다. 그 수준이 어지간한 광고 카피라이터보다 더하다. 최고의 설교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데 그가 진리를 위해 수고하지 않고 다른 것을 위해 헌신하면서 늙어가고 있다. 참 안타가운 일이다. 
마이크 비클이 전개하는 신부운동이 왜 우리에게는 느끼하고 거북하기만 할까?
 
(1)신사도운동의 대표적인 깃발이다
요즘 유별나게 “신부”를 찾고 “신부되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곳은 모두 신사도운동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난 번 거짓 선지자 오워를 한국에 초대한 단체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였다. 그 외에도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주님의 깨어있는 신부들” ... 비슷한 이름을 가진 기도모임이나 단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리고 기왕에 신부를 주제로 이름을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기를 바란다. 우리의 신부됨은 교회를 통하여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의 신부된 것이니, “신부들”이라고 표현하지 말고 “신부”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신부운동을 강조하는 그런 그룹들은 신사도운동의 최전선에서 앞장서 깃발을 흔들면서 길을 열어가는 선봉부대원들이다. 그래서 오워같은 거짓 선지자도 바로 그들이 초청한 것이다. 대표적인 신사도운동 교회인 큰 믿음 교회는 아예 홈 페이지의 전면에 신부운동하는 교회라고 명시하고 있다.
 
비록 IHOP이 다른 단체들보다 더 멋진 언어적 재능으로 “주님과 친밀한 신부”, “신부로서의 정체성 회복”,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의 열정”, “신랑 하나님의 계시”라며 멋있게 각색을 시킬지라도 신부타령하는 그 본질은 일치한다. 그래서 보자마자 느끼한 것이다. 
 
(2)신비 엘리트 그룹이다
그들의 신부의 개념은 보편 교회의 성도 일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신비한 영적 엘리트 계층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너희 교회에서는 친밀한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 교회 또는 IHOP으로 와서 신부되게 하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꼭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불순한 신념이 있다.
기독교는 원래 신부운동하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신부운동은 2000년 전 오순절 날부터 시작되었다. 승천하신 예수의 영이 지상에 강림하시어 그의 십자가의 구속의 공로를 입은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공히 임하셨다. 그의 영이 성도들의 몸속으로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와 성도가 영적으로 일치되었다. 성도와 교회간에 우주적인 결혼 예식이 일어난 것이다. 그 순간 교회에게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지위가 주어졌고, 그 신분이 영원히 보장되었다. 교회가 얻은 하나님의 신부의 지위는 영원한 것이지 한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후의 기독교의 신부운동은 “신부가 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신부로서의 바른 삶과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어야 한다.
 
신랑이 학대해서 신부들이 다 도망이라도 쳤다는 것인가? 아니면 곱고 예뻤던 신부들이 다 늙은 할머니가 되기라도 했는가? 왜 다시 신부운동을 새로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2000년 전의 혼인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혼인의 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마이크비클의 설교를 직접 들어서 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 할 때에 그의 신부에 관한 신학이 드러났었다. 열 명 모두가 크리스챤인데 그 중의 다섯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사역도 부지런히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크리스챤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은 기름부음을 받아 종말의 부흥과 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생기가 넘치는 크리스챤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 다섯 명의 기름부음을 받은 처녀들이 곧 그들이 벌이는 신부운동의 모델인 것이다. 그래서 IHOP에서 마이크 비클이 키워내는 신부는 “성도들 중의 성도”이고 “교회들 중의 교회”이다. 또 다시 말하면 교회들 중에서 오직 신사도운동하는 교회들만이 참 신부들의 교회라는 것이다. 
 
그런 신부를 만드는 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이다. 하프(찬양)와 보울(기도)이 IHOP에 있는 가상의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어우러지고 교차하면 신비한 영적 에너지가 창출된다고 했다. 마이크 비클의 “기도의 용광로: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글 속에 이런 사상이 나타나 있다. IHOP 한국지부 홈 페이지의   “자료실”( http://www.ihopkc.com/ihopkorean/Resource.php ).

 다르게 말하면 구약의 지성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처럼 영광스러운 (영적인) 구름(Golry Cloud)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서 찬양하고 경배하는 성도들에게 그곳에 창출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에너지가 성도들에게 임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자리에서 친밀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진 엘리트 성도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마이크 비클이 말하는 신부사상은 성경 어디에서도 지지하는 바가 없다. 우리보다는 같은 미국 사람들이 더 그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Bob DeWaay라는 미국 사람이 IHOP의 문제점을 기술한 “The Latter Rain Redivivus”라는 글에 마이크 비클의 신부운동의 허구성이 많이 지적되어 있다. 그도 역시 가장 먼저 마이크 비클의 기름부음과 신부운동의 이론이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신부와 신부되게 하는 기름에 대해서 전개하는 마이크 비클의 논리는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풍유적인 성경해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되살아난 늦은 비”, 밥 드웨이,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9238527
 
그래서 어떤 분은 만일 IHOP에서 마이크 비클이 말하는 것처럼 “그곳에서 어떤 신부되게 하는 기름이 나온다면 그것은 사탄의 오줌이나 체액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님과 친밀한 신부가 되기 위해 IHOP에 가는 길은 자칫 마귀에게 시집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라고도 했다. 왜냐하면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곳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3)영적완성을 이루는 세대의 주역이다
마이크 비클의 신부운동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성은 늦은 비 운동으로부터 지금의 신사도운동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종말의 선택된 세대의 영적 완성과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찍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종말군대의 개념이 있었다. 그들이 출현하여 영적으로 이 땅을 완전히 평정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도말한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성취하는 특별한 영적집단이 나타난다는 사상이 있다.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들” “요엘의 군대” ... 라는 말들이 다 그런 것이다.
 
그런 개념들은 정말 지저분한 쓰레기들이다. 왜냐하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장차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로서 그들이 감히 입에 담는 “영적완성”을 이 땅에 친히 베푸실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 날에 그리스도를 뵙기를 고대할 뿐이다.  
마이크 비클의 신부의 개념은 신사도운동의 영적완성을 이루어서 하나님나라를 성취하는 그런 집단의 개념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가 “신부의 패러다임의 계시”(revelation of the bridal paradigm)에 대해서 가르칠 때에 신부운동을 통하여 교회 안에 어떤 철저한 변화가 있기까지 예수께서는 재림하지 못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마이크 비클은 “그는 아무 때에나 오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전 세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에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중보를 부르짖을 때까지 오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Ibid.
 
이러한 그의 신부사상이 신사도운동가들의 “요엘의 군대”, 사상이나, ”선택된 세대의 씨앗“,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들“ 등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IHOP이 자체 홈페이지나 다른 통로를 통하여 요엘의 군대의 개념 등을 거부한다며 신사도운동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언급들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신부운동부터 고쳐야 한다. 전통적 신사도운동가들의 요엘의 군대나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소련의 KGB 같은 집단이라면 IHOP의 신부집단은 CIA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을까? 명칭과 이미지가 다를 뿐 하는 일은 같다.
 
(4)신비적이고 관능적이다
마이크 비클의 신부사상은 그의 아가서 강해에서 출발했다. 그의 아가서 강해를 읽어보니 뚜렷하게 발견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지나치게 남녀의 실제 애정표현과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이다. 솔로몬 왕과 여인의 사랑의 스토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교회)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로 풀어 나간다.
 
이 두 가지의 문제는 결국 예수님과 성도 사이의 “야릇한 분위기”로 연결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솔로몬과 여인의 사랑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예수님과 교회의 친밀함을 의미한다는 전통적 해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교회와 예수님의 관계로 사랑의 표현들이 적용되어 질 때에는 위험스러운 감정이나 분위기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솔로몬와 여인의 사랑이 예수님과 개인 성도와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적용되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들의 감정적인 영역까지 터치되어진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에 잡힌 소중한 신부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입맞춤”, “입맞춤은 부부의 거룩한 사랑, 친밀감을 말한다”, “거룩한 품으심”, “거룩한 입맞춤: 신부의 가장 큰 소원”, “(예수님이) 거룩한 질투의 사랑을 신부의 마음에 인(seal)치신다”, “실제적용: 하나님의 말씀의 입맞춤을 구하라” ... 이런 표현을 동원하면서 아가서를 풀어가고 있었다. 마이크 비클, 아가서 강해, IHOP의 한국지부 홈 페이지의 자료실,
   ( http://www.ihopkc.com/ihopkorean/Resource.php ).
 
자꾸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매우 감정적인 사람은 “예수님! 오늘 밤 제 방으로 오세요!”라고 마음으로 말하지는 않을까? 전혀 불가능한 추측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언어들이 분위기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마이크 비클은 이러한 내용들을 실제 남녀의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지 말자고도 강조한다. 정말 그의 의도가 그렇다면 다른 언어들을 사용했어야 한다. 자꾸 말하고 들으면 상상하게 되고, 상상하면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바른 믿음은 바른 언어와 표현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IHOP에서 상주하는 스탭들이나 다른 누구가 이런 분위기에서 배우고 기도하다가 그런 남녀간의 행동이 실제로 하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상한 지도자와 신도들이 집단으로 벌거벗고 뭔 일을 하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다. 그들이 시작부터 작정하고서 음란해지자! 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동일하게 성경을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성경을 어떻게 보았는가? 그것이었다. 마이크 비클이 아가서를 기초로 하여 발전시킨 “신부 패러다임”(Bridal Paradigm)이 염려스럽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관심을 가지고 보는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생각을 이미 하고 있다. K. Jentoft라는 분이 쓴 “마이크 비클의 기둥서방 예수”(Mike Bickle's Gigolo Jesus)라는 article을 보았다. 그 분의 지적이 정확했다. 그는 “IHOP에서 나타나는 “신랑 예수”는 사도들과 사도들의 성경에서 발견되는 예수가 아니다. 마이크 비클은 성경에 감추어져 있는 “기둥서방 예수”와 깊은 사랑에 빠지라고 요청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K. Jentoft, "Mike Bickle's Gigolo Jesus", Herescope 2008년 5월 1일,
    http://herescope.blogspot.com/2008/05/mike-bickles-gigolo-jesus.html
 
그는 계속 이어서 더욱 더 중요한 지적을 했다. 마이크 비클이 아가서를 통하여 “신랑예수”에 대한 가르침을 발전시킨 방법은 솔로몬과 한 여인의 인간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비정상적인 영적해석을 시도하여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관계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종교개혁의 기본 기치인 “오직 성경”이라는 중요한 관점에도 크게 위배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언제나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면서 성장하게 하는 범위 안에서라면 좀 다른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Ibid.
 
이것이 바로 마이크 비클의 신앙운동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성경을 많이 안다. 그러나 바르게 읽고 해석하지 않는다. 바르게 적용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가 아는 성경의 지식들이 교회에 해가되는 큰일들의 도구가 되고 있다.

5)이스라엘 회복운동
 
IHOP이 신사도운동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마이크 비클이 이스라엘 회복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가 이스라엘 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는 종종 구약 유대교의 상징물들이 등장한다. 제사장들이 불었던 동물의 뿔로 만든 악기를 불기고 하고, 언약궤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사실 언약궤는 IHOP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4/365 기도운동은 “다윗의 장막의 영”을 신학적 모티프로 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다윗의 장막의 심장은 언약궤였다. 그러므로 IHOP의 종교에도 구약 유대교적 요소가 매우 짙다고 보아야 한다.
 
예루살렘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제는 복음적 관점에서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쏟고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천부적인 혈통의 가치를 지금도 추앙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이 아니다. 이제는 예수의 피 하나 뿐이다. 여전히 이스라엘의 피를 강조하고, 이스라엘의 상황이 세계역사의 가장 정확한 나침판이고,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영원히 이스라엘이라는 사상은 절대로 복음적이지 않다. 복음의 정신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그들도 온 세계의 열방들과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하나의 민족일 뿐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더 이상의 특별함은 없다.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며 세계선교를 명령하였다. 그리고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번도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나에게 돌려야 하느니라! 이스라엘이 내게로 돌아와서 구약에서 약속한 것들이 이루어져야 내가 재림할 수 있느니라! 이점 명심하거라!”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성경적인 근거없이 예수님을 미친 듯이 위하는 신사도운동가들의 열성일 뿐이다.
 
그리고 또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오직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갈6:15-16).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바울 사도의 강조점이 무엇인가? 온 세상의 구원의 루트는 단 하나, 십자가이며 모든 민족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어찌 대하는가에 따라 살고 죽는다. 십자가 안에서 이스라엘이나 한국이나 스리랑카가 다 같다.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 즉, 온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피 묻은 복음이 편만하게 스며들 때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골짜기에도 그 피가 스며들게 하실 것이다.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충분하게 전해질 때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너희가 이 비밀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라고 바울을 말씀하셨다. 교회의 바람직한 선교의 자세는 이스라엘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말고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한 두 이스라엘 전문 선교기관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상황을 깊이 예의주시하고, 모든 교회들에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함께 기도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교회들이 “모이면 이스라엘! 흩어지면 예루살렘!”하는 모양새는 경계해야 할 무식한 짓이다.   
 
특히 어떤 선교단체가 하는 것처럼 “한국과 중국에서 선교의 군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중동의 많은 무슬림 국가들을 복음으로 굴복시키고 예루살렘에 이르면 선교는 완성되고 예수님은 재림하신다”, “역사를 돌아보면 복음은 항상 서쪽으로 이동했다.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이다. 지금도 복음을 서쪽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급하게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잠시 무슬림을 조종하는 사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의 군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시점에서 순교의 피가 필요하다. 그 피가 마귀를 물리칠 것이다. 그러니 머뭇거리지 말고 무리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이런 선교운동은 정말 무식한 짓이다.
 
(1)세대주의 종말사상에 기초한다
예루살렘을 최종 싸움터로 설정하는 것은 세대주의 종말론의 핵심이고, 순교자가 나올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면서 뚫겠다는 자세는 한국의 귀신론의 신앙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신사도운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독특한 선교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세대주의는 교회와 이스라엘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교회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스라엘로 남아서 구원과 영생에 이른다고 한다. 세대주의의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우리 교회들이 휴거되고 난 후 뒤 늦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약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들이 뒤 늦게 성취되는 시간이며 장소이다. 우리 이방인 성도들은 그때 천국에서 예수님과 따로 지낸다. 이것이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신사도운동의 뿌리가 미국 하나님의 성회였고, 그 당시에는 미국의 모든 교회들이 세대주의를 믿었고, 특히 오순절 교단이 그때나 지금이나 더욱 세대주의를 믿는다. 그래서 이 교단에서 이단이라 정죄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운 것이 그것이었으므로 계속 세대주의 역사관을 발전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신사도운동가들과 교회들은 이스라엘의 혈통과 땅이 중시하는 선교를 전개한다.
 
다음은 신사도운동하는 어떤 교회의 이스라엘을 위한 실제의 기도이다.
“북방 구소련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문이 닫히기 전에 속히 고국으로 돌아갈 지어다!
북미의 유대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토로 돌아갈 지어다!
남미와 중미의 유대인들은 재난이 오기 전에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갈 지어다!
유럽의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가 다시 창궐하기 전에 고토로 돌아갈 지어다!
폴란드 유대인들은 속히 고국으로 돌아갈 지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고 모든 성도와 교회는 깰 지어다!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되고 이방에는 더 큰 부요함이 충만할 지어다!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24 시간 중보기도 운동하는 그룹들이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교회에서 일어날 지어다!
한국교회 내에 존재하는 “대체신학”(교회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대체하였다는 신학)은 붕괴될 지어다!
교회 내에 새 시대 새 일군들이 많이 세워질 지어다!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크게 참여할 지어다!” 사랑과 진리교회의 홈 페이지( http://ltchurch.com/main/ltc0501/page/2#topview )의 “이스라엘 기도문 50주”,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였다는 가르침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피와 땅의 가치가 영원하다는 사상이 일반 교인들에게 널리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십자가를 통하여 구약 이스라엘을 계승하였다는 사상(대체신학)을 명백하게 거부한다고 천명하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으로 모여들어 장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나라(천년왕국)가 건설될 것임을 믿는 흔적이 명백하게 보인다. 이런 내용이 모든 교인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기도제목으로 삼도록 하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만일 마이크 비클에게서 세대주의적 이스라엘 회복 사상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IHOP이 신사도운동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발견하였다. 마이크 비클의 요엘서 강해서의 마지막 14장 17-21절에 대한 소제목은 “천년왕국에서의 이스라엘의 승리”이다. 제목에서 벌써 천년왕국 동안 이스라엘이 승리한 내용은 암시하고 있다. 세대주의 사상인 것이다. 만일 그가 천년왕국을 교회와 연관시켰거나, 혹시 이스라엘을 이야기 할지라도 교회와 연관지어서 이야기 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그러나 그는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20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천년 왕국 때에 시온 또는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인들과 문자 그대로 함께 살고 거하실 것이다”, “천년 왕국 동안 예수님은 시온(예루살렘)에서 온 땅을 다스릴 것이다”, “천년 왕국 시대에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방인들이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이크 비클,『요엘서』성상학 역(서울: 드보라하우스, 2009),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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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나 다른 성경에서는 너무나도 염려스럽게 영적인 해석을 주로 하더니 여기서는 100% 문자적인 해석을 했다. 이것이 바로 세대주의의 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 사람들이 선교에 뛰어들면 반드시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특이한 열심을 보이고,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서 선교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다음의 영상을 보면 마이크 비클이 확실하게 신사도운동가로서 이스라엘 회복운동을 선교의 중심사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회복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성경을 그릇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IHOP은 신사도운동의 왜곡된 선교운동인 이스라엘 회복 사상에도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VxCfAR-AeSQ&feature=youtube_gdata
 

3.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마이크 비클과 IHOP이 신사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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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08 [06:39] 수정 | 삭제
  • 룻기가 그냥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로만 읽혀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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