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O.P과 마이크 비클의 문제점들(중)

김재성 목사 | 기사입력 2011/01/15 [12:37]

I.H.O.P과 마이크 비클의 문제점들(중)

김재성 목사 | 입력 : 2011/01/15 [12:37]
제 3 부  가짜 부흥운동의 이합집산이 보여준 진실

 미국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성령 “파워” 운동은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불꽃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윔버의 죽음과 ‘토론토 에어포드 블레싱’의 몰락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조사하고 있는 캔사스 IHOP의 정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있는데, 이들 두 집단이 한동안 같이 뭉쳐서 서로를 이용하다가, 노선시비로 다시 나뉘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더 이상 무엇을 추가하겠는가? 이미 복음적인 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빈야드 운동이 적극적으로 영접한 자들이 바로 캔사스 시티 선지자들인데, 이들이 서로 싸우고 마지막에 갈라서서 제각각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1. 빈야드 운동과 캔사스 선지자들의 연합과 분열

 오순절파 성령운동의 특징은 성경에 따르는 객관적인 신학의 검증없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정 지도자, 즉 교주나 교황과 같은 핵심 우무머리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 지도자의 주관적인 결정에 따라서 일순간에 혼란에 빠진다. 존 윔버는 풀러신학교에서 몰수를 당하고,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되자, 곧바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마이크 비클, 밥 존스, 폴 케인 등 캔사스 시티 펠로쉽 예언자들과 결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성령 체험은 이제 병고치는 은사 운동에서 예언과 집중 중보기도로 전략수정을 시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바로 이들 은사운동가들의 허구성이 잘 드러난다. 빈야드 운동이 철저히 검증되지 않은 거짓 부흥운동이었듯이, 그들과 결탁한 선지자들의 예언활동 역시 다를 바가 없다.
 빈야드 운동이 미국교게를 흔들었던 1988년부터 존 윔버와 마이크 비믈, 폴 케인, 밥 존스 등이 교제를 나누게 된다. 1989년부터 마이크 비클은 빈야드 운동에 속한 대회에서 예언과 중보기도 운동에 대해 강의하면서 깊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빈야드 운동은 주로 능력과 기적의 은사와 치유를 중점으로 하던 그룹이었기에,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존 윔버는 “처음에는 예배와 치유였고, 신약성경에 나와 있듯이 예언으로 적합한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고 방향 수정을 정당화했다. John Wimber, "Introducing Prophetic Ministry," Equipping the Saints, Fall 1989, 6.; Jackson, The Quest for the Radical Middle, 212.
 하지만, 이런 윔버의 기대는 불과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깨어졌다. 캔사스 선지자들 중에 밥 존스의 성추행 스캔들이 알려지면서 빈야드 운동과 결별하게 되고 말았다. 신비적인 부흥 운동가들의 허점은 인격의 성숙을 소홀히 하다가 경건과 성화의 밑바탕이 없어서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 (John Wimber, 1934-1997)는 요바 린다에서 퀘이커 회중들 속에서 신유 은사를 운동을 전개하다가, 갈보리 채풀에 속하여 또다시 신유은사 문제로 배척당하자,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약 2천명의 성도를 모으는 교회성장학의 기초설계자가 되었다. 이때 당시에 풀러신학교 피크 왜그너 교수의 제자가 되었고, 1982년부터 ‘Signs and Wonders and Church Growth,"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은사논쟁이 일어나자 1986년 3월 신학부 교수진의 반발로 강좌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Ministry and the Miraculous: A Case study a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ed. Lewis B. Smedes, Pasadena CA. Fuller Theological Seminary, 1987.
 이때까지 자신의 강의를 수강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빈야드 운동‘을 전개하였고, 왜그너 교수는 “제 3의 물결”이라고 주장했다. C. Peter Wagner, 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Ann Arbor: Servant Book, 1988), 25.

 그러나 빈야드 운동에 대한 공개적이며, 학문적인 공격이 지속되어서 윔버는 성령의 치유은사를 강력히 표방하던 사역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Dave Hunt & T. A. McMahon, The Seduction of Christianity: Spiritual Discernment in the Last Days (Eugene: Harvest House, 1985); James R. Coggins and Pual G. Hiebert, ed. Wonders and Word: An Ezamination of Issues RAised by John Wimbers Vineyard Movement (Winnipeg: Kindered Press, 1989).
 가장 저명한 학자들이 죤 윔버를 비판한 것은 1992년에 나온, “파워 종교”라는 책이다. Michael Scott Horton, ed., Power Religion: The Selling Out of the Evangelical Church? (Chicago: Moody Press, 1992).
 
 2. 빈야드가 보여 준 가짜 부흥운동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제 10장로교회”는 역사과 전통을 자랑하는 정통장로교회인데, 그 담임목사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Dr. James M. Boice)가 빈야드 운동의 허구성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빈야드 운동이 “거짓 종교”이므로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고 했다.   보이스 목사는 존 윔버가 “기적”은 설교하지만, “복음”을 무시하였다고 비판했다. 윔버를 따르는 성도들은 마치 기적을 보고서야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누가 우리를 구원하는가? 보이스 목사는 오직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id., 133.
 
 기적에 매달리면 고난의 역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D. A. Carson 교수는 너무나 에수님의 기적에만 집중하는 빈야드의 불건성을 지적하였다. 거짓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기적을 연출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최고의 회심은 기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가르침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1990년 7월, 존 윔버는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중 빈야드 운동 지도자들의 모임에 폴 케인, 마이크 비클, 밥 존스르 초대하였다. 그러면, 이들 “캔사스 시티 펠로쉽” 선지자들은 어찌하여 합류하였는가? 이 때에 바로 그루웬 목사의 ‘문서’가 폭로되어서 예언 사역을 하던 그들에게도 새로운 모색이 필요할만큼 궁지에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1990년 1월 21일, 주일 아침에, 어니 그루웬 (Ernie Gruen) 목사가 “우리가 웃음을 유지하면서 아무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설교를 통해서 캔사스 시티 선지자들의 오류에 대해서 폭로하였다. 따라서, 이런 각각의 위축되어질 상황과 필요로 인해서 전혀 모르고 지내던 두 그룹의 성령 은사주의자들이 합하여 진 것이다. Bill Jackson, The Quest for the Radical Middle, 205, 211, 216.
   
 또한 카나다 ‘토론토 블레싱‘의 특이한 현상들이 소개되어졌다. 밥 존스와 빈야드 예언가들 ( Jim Goll and John Paul Jackson)은 토론토 블레싱을 용납햇다. 피터 왜그너와 그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Cindy Jacobs, Dutch Sheets, Chuck Pierce, Ted Haggard) 등이 외곽에서 측면지원을 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던 릭 조이너(Rick Joyner)가 가담했고, 전 달라스 신학교 교수 Jack Deere는 1980년대 후반부터 윔버가 죽을 때까지 빈야드 운동을 하다가 선지자의 한사람으로 가담하였고, 토로토 블레싱을 인정했다. 이들 가운데 폴 케인과 밥 존스는 대단한 영향을 발휘했다. Deere, It Sounds Like the Mother of All Battles, Vineyard Ministries International, 1990 quoted by Jewel van der Merve in her Discernment newsletter, 1991); “You see why we're excited about someone like Paul Cain or Bob Jones coming on the scene? Or others that we 'ye met... you know those two powerful witnesses in Revelation 11:3? They are prophets. He said they will prophesy for 1,260 days. He's going to end the last day's just before His Son returns with a prophetic movement that will sweep the entire face of the earth and will eclipse anything we have ever seen before..."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핵심인사들이 차례차례 자신들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선지자 운동과 빈야드의 능력체험 신유은사가 충돌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탄의 권세를 사용하는 자들은 각각 자기 ‘왕국’ (kingdom)을 건설하려 하기 때문이다.
 몇 종류의 성령은사주의자들이 합작에서 결별에 이르기까지 긴장과 대립, 빈야드의 혼돈과 마이크 비클과의 결별수순은 이미 예고된 씨나리오와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빈야드 운동에 가담했던 스타이프 목사의 증언을 통해서 선지자들의 예언활동이 끼친 피해와 오류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이해하고, 이들이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확인할 수 있다:
 
 3. 톰 스타이프 목사의 증언: 빈야드 운동가의 입장에서 체험한 선지자들의 지배 Hank Hanergraaff, Counterfeit Revival (Dallas: Word Publishing, 1997): 행크 해너그파프,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이선숙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9)에 실린 서문을 볼 것.
 
 미국에서 나온 빈야드 운동에 대한 가장 본격적인 비판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행크 해너그라프 목사는 원래 ‘갈보리 채플’ 소속의 평신도 출신 목회자로서 탁월한 변증가적인 안목을 가지고 분석한 것을 제시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은 덴버에 있는 크로스로드 교회 (Crossroads church of Denver)의 담임목사 톰 스타이프 (Tom Tipe) 가 썼는데, 그는 원래는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에 소속 목사였다가 그 허상을 파악하고 성경적 교회로 돌아와서 여전히 덴버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을 이끄는 목회를 하고 있는 중이다. Jackson, The Quest for the Radical Middle, 319.
 그는 행크 헤너그라프의 증언들이야말로, 마틴 루터가 95개조문을 빗텐베르그 예배당 문에 걸어놓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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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중서부에서 리더회의가 일주일 동안 열렸는데, 몇 사람이 사적인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모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예언자들’'을 만나는 자리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영적은사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던터라 이 만남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보여 주실지 기다리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교회에 다섯 가지 사역, 즉 사도, 예언자, 목사, 교사, 복음전도자의 사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중에서 특히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이 회복된다는것에 큰도전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목사와교사, 복음 전도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만 회복된다면 분명 이 땅위에 큰부흥이 일어날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우리가 바로 이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자들로 선택받았다고 했다. 또한 이런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기름부음 받은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예언자들’'에게 자신들과 우리 빈야드 교회연합이 선택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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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중에 예언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이들이 우리를 한 사람씩 데리고 나가 우리의 비밀을 상세히 드러냈을 때 의구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예언자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자들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예언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예언자들을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며 개인적인 일들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중략)-----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서 자신이 하게 될 역할과 위치와 성공여부에 대해 ‘'개인적인 예언’'을 받았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회복’'과 우리가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땅’'으로 오게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즉시 짐을 꾸려 달려가 확신 가운데 예언을 받았고, 성공적으로 사역하게 되리라는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다. 심지어 예언자들은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교회 직원을 교체하기도 하고, 교회의 정책과 관행을 바꿔 버리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목사들 개개인에게 기름부음을 행하고 그들에게 치유와 사도적 약속을 주었다. 그러자 점점 목사들은 예언자들이 전화를 걸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예언자에게 전화를 걸어 가르침과 조언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불편해하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름부음을 받는 땅’'으로 달려갔다가 뭔가 일이 실패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자신들이 영적범죄를 저질렀다는 예언자들의 꿈과 예언 때문에 잘못 비난받기도 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기보다는 ‘'점괘가 든 과자’'를 믿으려는 신앙이 더 활개를 치게 되었다.몇몇 목회자들은 이런 모임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금 마음이 꺼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영적인 은사가 늘 완벽한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풀이 다 자랄 때까지는 베지마라”"는 철학을 들이 대며 계속 밀어붙였다. 즉“"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손을 놓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자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교회를 마음대로 휘둘렀다.약 2년이 지나자 모두가 예언자가 돼버린 것 같았다. 수 백 명의 빈야드 교회 성도들이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지도자며 성도며 할것없이 부지런히 예언을 하며 다녔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해준 예언을 작은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또 여기 저기서 우후죽순 격으로 열리는 예언 집회에 떼로 몰려 다녔다. 노트를 들고 몰려 다니는 군중은 더 많은 예언을 들으려는 희망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치유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세미나를 열어서 치유 기도의 공식과 방법을 가르쳤고, 몸에서 ‘'열점: 연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도받는 사람의 몸에 육체적인 ‘'떨림’'이 일어날 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예언집회에서 꿈과 꿈해석이 중앙무대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은 꿈을 그대로 노트에 일일이 적어서 가지고 오곤 했다. 그러면 이 꿈을 나중에 하나님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예언의 약속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조바심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다림은 수포로 돌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예언행렬’'이 유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절박한 심정으로 목회자에게 상담을 받고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십대들은 십대에 성공하여 스타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그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십대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이 위대한 사역을 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가 그런 자신의 ‘'기름부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은사를 ‘'발전시켜’'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여 지도자들에게로 몰려 들었다.어떤 사람들은 너무 예언에만 치중한 나머지 점점 성경에는 무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보다는 그저 ‘'직통계시’'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받은 예언이 성취될 수 없을까 두려워하며 이 예언자에서 저 예언자로 옮겨 다녔다. 예언자의 전화번호를 하나라도 더 알고 있는 것은 마치 보물지도를 얻는 것과 같았다. 이제는 예배시간에도 성경보다는 작은 노트를 더 소중히 여기며 붙들었다.어떤 사람들은 몸을 떨고 눈을 깜빡이는 것이 성령이 임한 증거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흉내내기도 했다. 그리고 사역팀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에게 달려와 손을 높이 들고 “"주님, 더 임하소서!”"라고 기도해 주기를 원했다. 몸을 떨고, 웃고, 울고, 눈을 씰룩 거리는 것은 성도들이 지도자들과 동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한 집회에서 8 천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던 설교가는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주석서를 보거나 원어사전을 들척이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목사들은 예언을 통해 주일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 지 들을수 있어야 한다고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우리 교회의 한 성도는 뭔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손이 ‘'뜨거워’'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징조를 추구하는 현상은 바로 우리 교회에서부터 시작했다.
내가 속한 노회의 교회들은 점점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이유는 복음주의가 신비주의로 대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출석률이 뚝 떨어졌다. 이유인즉, 사람들이 다른 동네에 사는 자신의 친척들을 교회에 초대하기 꺼려해서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이상한 모습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5년 된 우리교회에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략)-----------------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신이 서지 않거든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라.”
" 바로 성경이다!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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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라는 말씀을 임의로 적용하며 어떤 불안도 허용하지 않았다. --------------------성경은(고전14:17~19) 질서를 명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혼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야하는 나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대신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회개해야 했고, 다시 참목자로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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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교회는6천명 가량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매우 간단하다 (히4:12~13; 왕하22:8~13; 렘15:16).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과 같은 책은 반드시 출판되어야하고 독자들은 읽어야 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시대에도 바울의 사역을 막으려는 거짓 예언자들과 이교도들과 율법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잘못된 교리를 심어 놓으려 애썼다. 몇 달씩 집을 떠나, 열기와 먼지 속에서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먼거리를 여행하고, 또 힘들여 성경을 하나 하나 베껴쓰는 일을 한 것은 바로 거짓교리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은 이상하게도 거짓 교리가 너무나 철저하고 신속하게 파고든다. 성경적으로 바로 잡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한 때다. 15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교회는 요한 테첼이라는 세속적인 사제의 계책에 말려들어 오염되어 있었다. 테첼은 사람들을 속여 형벌을 면하려면 면죄부를 사야한다고 현혹했다. 분노한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사람들의 영적 불안감과 무지를 이용해 구원의 중재자로 자처하는 것을 반박하며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였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가짜 부흥운동이 출몰하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지금이 그런 시대라면『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이책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책이 진정한 영적 은사를 사모하고,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에 현혹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자들의 손에 들려진다면 좋은 도구가 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가짜 부흥운동에 현혹되었던 사람들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는 진정한 개혁을 경험할 때, 비로소 진정한 부흥을 맛볼 것이다.
     톰 스타이프 덴버 십자로 교회 목사
 
 4. 1991년 가을, 밥 존스의 성추문과 몰락
 1991년 가을 밥 존스의 비윤리적 행동이 폭로되었다. 그가 범한 부도덕한 섹스 행위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 때부터 밥 존스는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인물로 간주되었고, 캔사스 예언그룹에서는 탈락하게 되며, 단지 빈야드 운동의 일원으로 특별보호 속에 남게 된다. 그리고 그의 타락의 뉴스는 선지자들의 예언행위가 무너지는데 대못을 박는 것과 같았다. 1991 (Minister removed after confession of sexual misconduct, Olathe Daily News, 11/31/91.
 
 1995년 존 윔버는 자신의 단체에 속한 자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하고 선지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운동이기에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윔버는 마이크 비클과 헤어지고 난 후, 같은 해 12월에는 카나다 “토론토 에어포트 블레싱”에 대한 인정을 철회하고 또 다시 나뉘어진다. 이단은 또 다른 분파를 낳고, 그들 사이에 합종연횡이 이루어 진다해도,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 다투고 마는 것이다.    
 미국 교계에서 은사운동을 하던 오순절파의 이단적인 요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 앞에서 순종하고 복종하는 훈련이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다.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의 성령체험을 위주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배우려 하지 않고, 사람이 느끼고, 듣고, 보고, 체험하는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직통 계시와 음성을 듣는다는 신비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성령운동가들로 전락하여 서로 다른 은사들을 주장하다가 모두 다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20세기에 등장한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방언파, 치유파, 예언파, 귀신쫓아내는 파, 신령한 웃음과 넘어짐 현상에 치중하는 파, 관상기도파, 직통계시파 등등 도무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옳은 것이지 혼돈 그 자체이다. 포스퀘어 교단과 케이커가 서로 다르고,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이 떨어져 나와서 평신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등, 21세기 일부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자들의 행태는 혼돈상태에 빠져있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건데, 처음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던 무렵, 성경중심적이며, 체험을 중시하며, 복음 전도에 열정을 가진 교회들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종말적인 인식을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복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미국 기독교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전후 세대에게 성경의 종말을 강조하면서, 초교파 운동과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흐름이 나타났다. D. Wiiliam Faupel, The Everlasting Gospel: The Significance of Eschatology in the Development of Pentecostal Thought (England: University of Birmingham, 1989).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서 일어난 변화였다. R. Albert Mohler, Jr., "Evangelical": What's in a Name?" in The Coming Evangelical Crisis, ed. John H. Armstrong (Chicago: Moody Press, 1996), 29.
 
 특히, 오순절 교단 내에서마저도 삼위일체를 거부하여 이단으로 추방을 당한 윌리엄 브랜험이 등장하면서, 미국 은사운동은 성경에서 완전히 떠나 버린 불순한 씨앗이 뿌려졌다. 
 한편 복음주의 운동은 빌리 그래함 목사의 대중전도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개신교인들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여론형성을 주도하면서 1970년대에 강력하게 대두하였다. David R. Wells and John D. Woodbridge, eds., The Evangelicals: What They Believe, Who They are, Where They are Changing, rev. ed. (Grand Rapids: Baker, 1977), 9.: "But, here is a movement that is slowly awakening to a new role in American life, vigorously and often creatively speaking to the needs of contemporary society and simply refusing to retire to its assigned oblivion."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경직화된 신앙에 새로운 바람이 불러오면서 오순절 은사체험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기존의 정통교회들 보다는 자유스러운 개인체험을 강조하면서 함께 상부상조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성경비평가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비평적인 학설들을 거부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교단만이 정통이라는 주장들이 지나친 교파 분열을 일으키고 있던 때에, W.C.C. (세계교회협의회)와 N.A.E. (복음주의 연맹) 사이에 냉전시대의 대립이 깊어지던 시기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였다. 초교파적인 선교적 연대를 강조하던 복음주의자들과 개인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오순절파와는 상호 공통점이 많았다.

  하지만 복음적인 교회들의 강조는 ‘회심체험’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감동에 사로잡혀서 회심체험을 하는 것은 전인격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은 사역에 임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능력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생활에서 철저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지 않다. ‘회심체험’과 ‘은사체험’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중심이 다른 것이다.
 
 

제 4 부     마이크 비클에 대한 의문점들

 1. 직통 계시파에서 흘러나온 변형
 사람이나 사상이나 진공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나오며, 시대와 환경의 흐름 속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마이크 비클은 그가 몸담고 배웠던 뿌리가 왜곡된 은사주의, 신비적인 예언활동, 변질된 성령운동이었다. 그가 말세에 내린 은사들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예언활동을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의 태생이 잘못된 기독교임을 말해준다. Mike Bickle, Growing in the Prophetic, 22 비클은 두 가지를 갖오한다: “prophetic ,ministry"와 "the End time"에 오는 기적과 초자연적인 이적들이다.
 
 1979년 목사가 된 마이크 비클은 처음부터 정통 기독교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의 정확한 신임이나 검증이 (credentials)이 전혀 없다. 그는 목회사역 초기에 선지자들에게서 계시를 받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예언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그의 경력에 항상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장이다.  
 미주리 대학교 1학년이 최종학력으로 정규 신학교에서 수학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잠을 청하는 안방에서, 즉 스스로 침대 학교에서 성경을 읽고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기에 목회자로서, 감히 성경에 나타나는 예언자로서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허구라는 점이 드러난다.

 마이크 비클은 캔사스에서 어린 시절 성장하였고, 지금 주요 사역지도 역시 캔사스 시티이다. 마이크 비클의 첫 목회 사역지였던 세인트 루이스에서 어떻게 해서 그가 은사적인 예언자들의 신비주의에 접하게 되었는가를 밝혀주는 생생한 증언들과 지금 그가 사용하는 방법들의 문제점들은 다음의 인터넷 싸이트에서 찾아 볼수 있다. http://ihopisnewage.wordpress.com

 하지만, 그의 첫 목회사역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세인트 루이스 서쪽 지역에서 스물 다섯 명의 청소년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비클은 미주리 로즈버드에서 교회를 세우려다가 실패하고,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와서, ‘뉴 커번넌트 펠로쉽’이라는 교회의 청소년 목사로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 “남부 세인트 루이스 펠로쉽” (South St Louis Fellowship)이라는 교회를 두 번째로 세우고자 약 1년 반 동안 노력했었다. 푸트남 (Gene Putnam)이 목회하던 교회가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들의 건물로 합하였고, 그때에 좀 더 급진적인 형식으로 춤을 추는 식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1) 신비주의와 예언
 마이크 비클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목회적 사역에 관한 예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은 1982년 6월 경에 일어났다. 마이크 비클은 그전에 전혀 알지 못하는 예언자, 어거스틴 알카라 (Augustine Alcala)라는 선지자가 교회의 모임 시간에 일어나서 공개적으로 “주님은 너와 너의 아내 다이앤의 갈 길을 다시 지도하고 계시는데, 너는 앞으로 캔사스 시티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Mike Bickle and Michael Sullivant, Growing in the Prophetic (Orlando: Creation House, 1979), 29-31.David Pytches, Some Said It Thundered: A Personal Encounter with the Kansas City Prophets  (Nashville: Thomas Nelson, 1991), 60-62. 

 그래서 그는 “캔사스 시티로 이사 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예언에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즉, 그 이전에는 이런 예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비로서 이 무렵부터 아주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의 초자연적인 예언에 대해서 개인적인 접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쓰여진 그대로 믿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의문점들이 있다. James A. Beverly, Holy Laughter & the Toronto Blessing (Grand Rapids: Zondervan, 1995), 212-213.

 캔사스 시티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의문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예언들은 진실된 것으로 인정하라는 것인데, 과연 이러한 예언을 받았는지도 의심이거니와, 그 당시 예언하는 자들이 누구였으며, 그들의 예언들이 어디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캔사스로 다시 돌아오는 데는 어거스틴 아톨라로부터 받은 예언의 지시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일까? 당시 그의 주변에 있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새로운 형식의 교회를 세워서, 어느 교단에도 소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권위에만 굴복하는 극단적인 무리를 만들어보려는 헛된 야심에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이단들은 오직 특정인 한 사람의 권위에만 의존하도록  심리적으로 교묘한 전술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예언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2) 침대 신학의 위험성:
 앞에 언급한 예언을 듣게 된 무렵에, 마이크 비클은 인도에서 설교할 일정이 있어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방하게 되었는데, 자신도 동일한 예언을 직접 받았다고 주장한다. 마이크 비클은 한달 동안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비행기표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1982년 9월 인도와 한국을 거쳐서 이집트 카이로에 머물고 있던 중, 호텔 방에서 "내적으로 울리는 음성“을 들었다는것이다. 하나님께서 캔사스로 이사하여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기를 원하신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Mike Bickle, "Prophetic History," 1. 8쪽. 1986년 봄. Earnest Gruen, "Document," II. "Movement,"에서 재인용.

 그는 두려웠지만, 곧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의 끝까지 미치게 될 사역의 동반자로 너를 초대한다. 나는 이 일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고, 많은 사람들이 예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네가지 계획을 가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다고 주장한다:
 1) 밤과 낮으로 드리는 기도
 2) 마음의 거룩함
 3) 흔들리지 않는 믿음
 4) 가난한 자들에 주는 흡족하게 나눠주는 일 Bill Jackson, The Quest for the Radical Middle (Cape Town: Vineyard International Publishing, 1999), 193. 
 
 그리고 “너의 마음에서 네 동료들이 이런 마음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첨가하여서 “이 한 세대 내에 교회의 이해와 표현을 내가 바꿀 것이다”고 하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구절을 믿지 않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존경심과 두려움을 가지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비록 세상에서 미움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는 것과 같이 되리라는 것이다. Mike Bickle and Michael Sullivant, Growing in the Prophetic, 30.
 
  
정작 비클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로서 명성을 꿈꾸며, 챨스 피니 (Charles Finney) 죤 레이크 처럼 체험적인 부흥사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운동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마이크 비클은 정상적인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가 주위에서 보고 배운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아래 새것이란 없다”. 정통 기독교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클의 문제점은 예언과 계시를 직접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다는 허황된 정당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침대에서 신학을 마쳤다고 한다. 이것은 극도의 개인적 주관주의와 무지한 신앙심에 몰입하게 되어져서 허황된 야심으로 발전되고 만다. 보편적인 기독교 교회에서는 개개인의 성도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은혜를 받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사람이 공적인 예배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공적인 승인 절차를 거쳐서 자신의 신앙 조항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교회를 차리고, 스스로 인정하여 어느 날부터 말씀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 내 다양한 교회들과 특히 이단적인 오순절파 성령운동가들은  일반 교회의 목회자 양육과정과 철저한 검증, 시험 등과는 달리 비교적 단순하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침례교회와 회중교회, 독립교회에서는 엄격한 교육과 객관적 검증절차를 신중하게 시행하지 않는다. 1920년대에 시작된 포스퀘어 교단이나,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 수많은 독립적인 침례교회들에서는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의 사역에 강조점을 두었다. 지금도 얼마든지 신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목사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빈야드 운동을 하고 있는 교회들도 평신도 목회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리고 캔사스 시티 예언자들도 모두 그러하다. 기독교가 과연 어떤 신앙을 핵심으로 가지고 있는지에 관하여 정밀하게 공부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일부 오순절파 교회들은 너나 할 것없이 남보다 특이한 성령 체험을 가지고 앞장서서 나타났다. 방언을 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하는자, 기적을 행하면서 귀신을 쫒아내는 자들, 이들은 현상적으로 성령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스스로 목회자가 되었다. 누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고, 객관적으로 어떤 ‘자격’을 구비했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수많은 오순절파 교회들은 교리적으로 혼란과 혼돈을 피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 전서 4장 14절에서,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라고 부탁한 바 있다. 마이크 비클과 그의 동료들은 기독교 교회의 어디에도 연계되어서 성장하거나 훈련받거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 사도라고 칭하는 그룹에 연계되어서 활동하고 있다.
 
 3) 밥 존스의 망토 
 마이크 비클은 1983년 1월, 한 형제가 자신에게 찾아와서 밥 존스라는 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3년 3월 7일, 밥 존스가 자신의 사무실에 와서 사도행전 시대를 뛰어넘는 “특별한 운동” (special movement) 과 “새로운 질서” (New Order)를 일으키게 될 것을 예언으로 받았다고 주장한다. Mike Bickle, "Remembering Our Heritage," May 5, 1987. See, Gruen, "Documentation," 55.
 지속적으로 초기 시절에 마이크 비클은 자신의 출발을 신비스럽게 해 주는 밥 존스의 예언을 항상 내세운다. 그래서 예언의 내용에 따르자면 마이크 비클이 성령의 권능을 받은 ‘운동’의 주역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후에는 개인적으로 밥 존스를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멸시하고 깍아내리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밥 존스의 후광을 얻으려 했고, 이제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거추장스러운 듯이 깍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누군가의 권위를 사용하고, 그가 더 이상 가치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자 더 이상 신뢰를 하지 않는 천박한 인격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밥 존스가 마이크 비클에게 해 주었다는 에언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2.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 중심 진리의 실종
 이미 앞에서 IHOP '국제기도의 집‘에 관계된 사역에서 마이크 비클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왜 그의 신학이 잘못되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처음 그의 선지자 사역의 부르심을 이야기 하는 목회 초기부터 마이크 비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순종하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힘을 발휘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대부분의 성령운동가들에게 발견되는 문제점은 성령론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 균형있게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기실 성령운동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야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가지게 되면, 구원의 확실한 이해와 풍성한 하나님의 마이클 비클과 그의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가르침 가운데는 하나님에 대한 혼돈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가?

 정통 기독교는 ‘사도신경’ ‘니케야 신조’ ‘칼세톤 신경’ 등에 요약되어 나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성취,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과 인격성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마이크 비클과 그 주변의 선지자들은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십자가와 부활, 그의 재림과 성도의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정도에서 벗어났다. 은총에 대한 보장을 깨닫게 되어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 위에 설 수 있다. 

  마이크 비클의 설교와 저서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이처럼 빈약한 신학적 토대위에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서 체험한 것들을 어설프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근본과 기초들을 어떻게 어디서 정립하였는지 사실 모두 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속내를 전부 다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마이크 비클은 IHOP'국제기도의 집‘을 운영하면서 예언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비클의 사역 초기는 “캔자스 시티 펠로우십”의 설립자로서인데, 그 후에는 “메트로 빈야드 교회” 를 이끌었고, 이 빈야드 운동의 대부였던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 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토론토 블레싱’에 쏟아지는 신학적 비판을 감안한 나머지, 그는 캔자스시티 선지자들로부터 독립하고, 그의 사역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었다. 그리고 존 윔버가 받아들여서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원래는 미국에서 카나다로 건너가서 그쪽의 빈야드 운동에서 나온 "늦은비" (the Latter Rain)를 사역의 핵심요소를 변형가미한 뒤, 24시간 7일 기도운동을 중점으로 하는 “국제 기도의 집”을 만들었다.

 마이크 비클이 한동안 몸 담았던 빈야드 운동은 원래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오순절파 교단에서 성장한 척 스미스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포스퀘어” 교단 신학교인 라이프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하고, 17년간 목회자로 일하다가 떨어져 나와서 독립했다. Bill Jackson, The Quest for the Radical Middle: A History of the Vineyard (Kenilworth; Vineyard International Publishing, 1999), 33,
 
 존 윔버는 재즈 음악가로 살다가, 회심하여 방언과 예언 운동에 참여하던 중 1964년에서 1970년까지 섬기던 퀘어커파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교회에서 쫒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갈보리 채플에 합류하여 그들과 같은 노선을 걷다가 다시 또 병고치는 사역에 치중해서 갈라서게 되었다. 존 윔버의 치유사역을 체험하게 된 피터 와그너를 만나서 1974년부터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수학하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 Ibid., 51, 53.
  
 빈야드 운동은 퀘이커파와 달리, 1940년대 미국 오순절파에서 활약하던 윌리엄 브랜험, 오럴 로버츠, 캐터린 쿨만 등 세 사람의 신비적인 치유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빈야드 운동은 오순절 교단에서 이단성을 파악하고 추방한 ‘늦은비’ 운동에서도 영향을 입었는데, 카나다에서 “늦은비” (the Latter Rain) 운동이 일어나서 그 위세를 떨치게 되었지만 정통 교회에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가 영향을 받은 존 윔버 등은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양태론’으로 빠진 삼위일체 이단의 전통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특히 브랜험이 삼위일체를 거부하여 이단으로 정죄를 당하면서도, 끝가지 자신의 이념을 바꾸지 않았던 것에서 일종의 특수한 연계성과 전통을 가진 것으로 자부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오순절 운동가들 중에서, 삼위일체를 따르는 은사파가 있는 반면에, 보다 급진적으로 한분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단일신론적 오순절파 (Oneness Pentecostals)라고 부르는 그룹이 내려오고 있다. J. Lee Grady, “"The Other Pentecostals,”" Charisma, June 1997, 62-68. The June 1997 issue of Charisma features an article by executive editor J. Lee Grady entitled, “"The Other Pentecostals,”"1 reporting on the estimated 17 million Oneness Pentecostals worldwide with 2.1 million in the United States.

 오순절파의 신론이 두 그룹으로 갈라진 것이다. 삼위일체론적 오순절파와 단일신론적 오순절파는 각각 자신들의 근거를 1906년 아주사에서 시작된 방언 은사자들에게서부터 나온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오순절 은사주의에서는 성령의 인격성과 구원의 적용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은사만에 치우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이크 비클은 성령의 역할은 ‘기름부음’이요, 자신에게 예언의 능력 정도로만 생각한다. 근의 부흥운동가들을 살펴보면, 한심하리만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개념정립이 빈약하다. 성령은 강조하면서도 그저 하나님의 능력, 특이한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고만다. 그 성령께서 구원의 적용자이시며, 우리의 보호자가 되심을 잊어버리고, 성령에 게 순종하려 하기 보다는, 능력을 사용하고 명령하려고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은 한분 참되신 하나님의 본성 안에 영원히 서로 구별되는 세 인격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던 때에, 하늘에서는 성부의 음성이 들리고, 머리 위로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면서, 구원사역에 나서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의 전통을 물려받은 교회들은 항상 삼위일체 신학을 주장하여 왔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깍아내리는 것이다. 성경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단이요, 이 외의 항목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오점들이다.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단일신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오순절파에서는 영적인 엘리트주의와 이단적인 영적 변질상태로 기울어져 있다. 과연 하나님의 단일성 (Oneness)을 강조하는 자들은 정작 세례를 줄 때에는 누구의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단일성을 강조하다가 삼위일체론으로 전향한 목사의 고백에서 나온 말이다.  Gregory Boyd, Oneness Pentecostals and the Trinity (Grand Rapids: Baker, 1992), 196.

 하나님의 단일성을 믿는 미국 내 가장 큰 교단이 ‘연합 오순절 교회’ (the United Pentecostal Church, 약자로는 UPC) 인데, 이들은 성경의 핵심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으므로, 사실상은 참된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정통교회들과 복음주의 교회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는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오순절파 교회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단임을 말하지 않고 있음이 참으로 일관성이 없는 일이요, 참담하다는 생각 뿐이다. Hank Hanegraaff, “"Is the United Pentecostal Church a Christian Church?”" CRI Perspective (Rancho Santa Margarita, CA: CRI, 1994)
 
 
3. 마이크 비클은 예언을 받는 하나님의 선지자인가?
 마이크 비클은 예언운동을 일으키는 새로운 질서의 주인공이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없고, 그는 예언자도 아니다. 그가 하고 있는 소위 예언이란 것들은 모두 다 사람에 대해서 하는 일종의 속임수이다. 그는 밥 존스가 임명한 선지자일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예언을 드러내는 종이 아니다. 현대 교회에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이 하늘로부터 직접 신비적인 계시를 받아서 직분을 맡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사역자들의 권위와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주님께서 친히 ‘기름부으신다’는 표현이나 주장들은 모두 다 구약시대의 일들이고, 그런 선지자들이라 하더라도 기록된 말씀을 능가할 권위와 권세도 없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거나, ‘계시’를 받았다 해서 그에 따른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런 일은 영적인 횡포요 위협이며, 바리새인들이 하던 일들이다. Michael Scott Horton, Power Religion, 19.
 
 교회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한다 (계3:22).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으로 감동을 받은 종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시고, 그것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신사도 운동에서 나온 계시와 예언의 능력을 가진다는 선지자의 회복이 바로 근본적인 왜곡임을 알아야 한다. http://www.arkhaven.org/apostolic_reformation_deception.htm
 이미 풀러신학교에서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을 끌여들여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왜그너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George M. Marsden, Reforming Fundamentalism: Fuller Seminary and the New Evangelism (Grand Rapids: Eerdmans 1987), 294.
 
 예언이란 무엇인가? 누가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서 비밀스러운 뜻을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라는 말인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영감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Paul king Jewett, "Prophecy," in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ed. J.D. Duglas (Grand Rapids: Zondervan, 1974), 806.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서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다. 민수기 12장 6절에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라고 하셨고, 신명기 18장 9-22절에서도 이 선지자 직분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예언자는 자신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서 사용되어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Meredith G. Kline, The Structure of Biblical Authority (Grand Rapids: Eerdmans, 1975), 57.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매체 (human media)이다. 그는 받은 것 (dictation)만을 말한다. B. B. Warfield, "The Biblical Idea of Revelation," 87.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따라서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는 분이시며, 그 예언자가 말한 진리에 대해서 그 분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1872: Grand Rapids: Eerdmans, 1975), I:159.
 이처럼 주로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선지자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나비’ (nabi)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자이다. Gere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nld and New Testaments (Grand Rapids: Eerdmans, 1948), 29.
 
 동시에 ‘로에’ (roeh)라는 단어가 사무엘에 경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비젼이나 계시를 ‘본다’ (sees)는 뜻이다. Warfield, "The Biblical Idea of Revelation," 88.
 그래서 앞일을 내다 보는 자 (seer)이다. Edwards J. Young, My Servants the Prophets (Grand Rapids : Eerdmans, 1952), 61-65. Vos, Biblical Theology, 196: "These two names are translated into Biblical English by 'seer' without distinction."

 “그가 보았다” (이사야 1:1, 2:1, 13:1, 29:10-11, 아모스 1:1, 미가 1:1, 하박국 1:1) 는 표현에서 선지자 직분에 포함되는 특별한 형태의 계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선지자들이 ‘본다’는 측면은 예레미야 38:21, 에스겔 1:3-4, 하박국 2:1-2 등이며, 본 것을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참된 예언은 이미 앞에서 받은 예언들과 일치되는 것이지만 (신 18:21-22, 13:1-3), 거짓 예언은 참된 예언을 파괴 (perversion)시켜버린다. 그래서 참된 예언은 거짓 예언과 구별되어야 한다. Richard C. Gamble, The Whole Counsel of God, vol. 1, God's Mighty Acts in the Old Testament (Phillipsburg: P & R, 2010), 576.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과 동일한 맥락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세상에 악의 권세를 정복하러 오시는 승리에 관해서, 위로하며 권고하고, 예측하는 말씀을 전달하는 자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예언자들의 위치와 지위는 사도들보다 아래에 있으니,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교회에서 하나님이 지명한 첫째는 사도요, 다음이 예언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이다”고 되어있다. 고린도전서 14장 29절에 따라서, 예언들은 먼저 거짓됨이 없는가에 대해서 영들을 분별해 보도록 하였으며, 그 기준은 로마서 12장 6절에 나오는 대로 “믿음의 분수”이다. 특히, 영어 성경에는 “analogy of faith"로 표기되는 데, 이는 예언이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것인가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철저히 점검해야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은 오직 사도들에 의해서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다. 최고 선지자요, 교사이신 예수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과 모략을 완전히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Heidelberg Catechism, Lord's Day 12.
 
 마이크 비클은 누가 무슨 이유로해서 선지자, 예언자, 하나님의 종으로 임명했고 교회의 사역자로, 목사로 세웠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런 구원역사의 예언가라고 증거하는가? 그의 가르침들은 성경이 전하는 “믿음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 그의 모든 사역이 목표지점으로 지향하고 나타내는 것은 예언자로서, 선지자로서 마이클 비클이라는 자신의 명예만을 널리 알리려는 “운동“에 빠져있다. 그의 설교와 사역에서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초점이 드러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마이크 비클의 이름과 명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강조하는 바는, 온전한 예수님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시작한 새로운 질서, 신부, 기름부음, 마지막 때 등이다.
 밥 존스가 주님의 천사로부터 들은 바를 마이크 비클에게 전해주었는데, “진실로, 너는 주님의 선지자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로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믿음 안에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라는 첫 번째 사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둘째, 사도가 아니라면, 신약성경의 재현이나 연속된 예언이 아니다.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것들은 분명히 모두 다 성경에 나와 있다. 하지만,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다 성경적인 것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미래에 관하여 말씀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너무 쉽게, 경솔하게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추정해버리고 있고, 더구나 그런 은사를 가진 자에게 복종하며 접근 하려는 경향이 젊은이들에게 더욱 강하다.
 기독교인으로서 성도들이 ‘느낌’이나, ‘감정’, ‘정신적인 자극’, ‘책임을 지려는 의지적인 결단’, ‘영적인 충만함’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John Murray,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r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6), vol. 1, 188.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사람의 상상을 초월해서 얼마든지 기적적으로 역사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앙의 체험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이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tr. Ford L.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1959), "Prefatory Address to King Francis I of France."
 그리고, 이런 인간들의 감정적이며, 영적인 체험현상을 계시로 혼돈하거나, 착각하는 혼란에 빠져서는 안된다. J. F. MacArthur Jr., Charismatic Chaos (Grand Rapids: Zondervan, 1992), 106-27, 194-245.
 
  성경에 나오는 이적과 기적과 방언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하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든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동일한 은사와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모두 다 능력과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전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그래서 하나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사용하실 사람들을 예비시키시고, 그들이 고난과 핍박과 역경을 감내하면서 역사 속에서 일하게 만드셨고, 힘을 주셨던 것이다.

 마이클 비클과 그 주변의 예언자들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특별하신 부르심을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하셨고, 기적들을 체험하게 하셨나를 잊어버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주의적인 환상과 착각에 빠져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전체 역사 속에서  사용된 예언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기적적인 증표들과 은사들은 구원 역사의 특정한 기간에 극히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Sinclair B. Ferguson, The Holy Spirit (Leicester: IVP, 1996); tr. 김재성, 「성령」(서울: IVP, 1999), 257-8.

 수 천년의 긴 역사 속에서 수 백 년 동안 아무런 계시도 주시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특수한 언약적 계시의 새로운 단계가 도래할 때에는 집중적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를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둠의 세력들에 의해서 멸절당할 위험이 있을 때에, 특별히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지시와 예언이 주어졌다. 모세를 세우시고 출애굽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시기에 가장 많은 이적과 예언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정착하는 단계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계시가 필요했다. 엘리야와 엘리사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특별한 권능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그러나 예레미야, 오바댜, 말라기, 아모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선지자들의 경우에는 기적이나, 이적적인 사건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예언이나 권능을 행하는 특별한 기적들은 모든 선지자들에게 규범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아니었다. 특별한 예언과 기적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새로운 상황들이 시대에 따라 발생하므로 일시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기적들과 이적들이 주어진 이유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2). 바울과 바나바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셨다” (행 14:3).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신 때에 특별 계시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긴급하신 간섭이 나타났다: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18-20).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은 이런 예언과 표적들과 이적들과 기사 등 특이한 현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진정한 사도적 사역의 확증적인 증표로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성에대해서 확고한 증거를 제시한다: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 (고후 12:12)이라고 말하였다. 사도적인 사역과 그에 대한 특별한 확증으로서 부여된 은사의 현상들이 있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3-4)  

 사도들은 모든 성도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증거를 놓는 토대가 되는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세워나가는 기초석으로서 새로운 계시를 확증하는 표시로서 성령의 나타남을 제시하였다. 이런 은사들은 최우선적이 기능자체가 한시적인 성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은사들이 오직 사도들에 의해서만 행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도적인 복음과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증을 주기 위하여서 성령의 증거들을 수반하는 독특한 기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새로운 계시의 신뢰성을 뒷받침했고, 그로 인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흥왕하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2:8-12)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신 까닭에 결코 폐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해준 것들은, 즉 방언, 예언, 지식 등은 미래에, 장차 재림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지식을 갖게 되어지는 때가 오면, 더 이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어린 아이는 성숙하지 못해서 ‘자기 중심적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적적인 은사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거울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온전한 것이 오는 것은 재림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그 사이에 성경이 완성되면서, 점차 온전한 것이 성경 하나로 집대성 되었다.  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Phillipsburg: P & R, 1979), 109-110. idem,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Reformed Theological Review 51 (1992):1-10; idem, "A Cessationist View," in Are Miraculous Gifts for Today? Four Views (Grand Rapids: Zondervan, 1996), ed. Wayne A. Grudem, 25-64.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I:635-36. A. A. Hodge, Outlines of Theology (N.Y.: Scribner, 1879), 278-9.
그래서 초대교회의 지침이 되는 성경의 충분성이 주어졌다 (딤후 3:16-17). 하나님의 계시는 각 시대마다, 각 단계마다 언제나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계시의 절정이 나타났고, 신구약 성경 한권으로 집약되어졌다. 성경은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서 온전히 그분을 신뢰하며 온전히 그분께 순종하기 위해서 말씀하신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서 세워졌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가장 중추적인 교회 직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다. 사도들이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사도라는 직분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사도들과 함께 사역하던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도 점차 사라졌다. 3세기 이후로는 오직 교사들만 남아있게 되었다.” P. Jewett, "Prophecy," p. 807.

 따라서 오늘날 일부 오순절의 은사를 중시하는 기독교 교단들이 주장하는 “예언은사의 회복”이라는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요, “열광주의자들과 광신주의자들에게 이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다.“ Ibid., 807: "In our days, Pentecostal assemblies have revived what they believe to be the NT 'gift of prophecy.' It differs from tongues in that it is given in intelligible speech, but unlike conventional preaching, it is unprepared and spontaneous. It is not given to fanaticism."
 
  계시를 받는다는 특별 은사가 사도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어진다면,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는 가르침을 훼손시키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즉흥적이며, 일시적인 개인의 체험이나, 어떤 특수 상황 중에 주어지는 예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에서 나오는 변함없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따라서 성경을 훼손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둘째, 마이클 비클은 하나님의 사도들에 의해서 주어진 예언과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주시는 조명(illumination)의 차이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신학적인 혼돈에 빠져 있다. Ferguson, The Holy Spirit, 26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알도록 계시의 성령을 가지기를 기도하였다 (엡 1:17, 참고 마 16:17). 사도적인 계시가 영속적인 권위를 가진다면, 개인 성도들이 받는 계시는 주관적이며, 혼돈적일 경우가 많다.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0), 965; "prophecy is not to be isolated from tradition, from its Olt Testament background, and from the function of announcing and proclaiming the gospel of Jesus Christ. Nothing links it with trivial messages to individuals."
 예언에 대한 가르침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적인 오류와 거짓 예언에 속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검의 기준은 인간의 판단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고,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책이기 때문이다.

 일부 예언 은사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자들은 예언은사에 두 종류가 있으며, 높은 수준의 예언은 사도들과 선지자들 시대에 종결되었지만, 낮은 수준의 예언은사는 지금도 지속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Wayne A. 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1 Corinthians (Lanham, MD: University of American Press, 1982); idem, The Gift of Prophecy in the New Testament and Today (Westchester: Crossway, 1988), 90; idem,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94).

 사도행전 11:28절에 아가보가 흉년을 예언한 것과 21:10-11에서 사도 바울의 결박을 예언한 것을 구별해서, 후자의 경우는 예언을 했지만 사도 바울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성경해석이다. 사도 바울의 결박을 호소하는 아가보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사도행전 28장 17절에,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다.” 누가는 아가보의 예언을 기록하면서 바울의 미래에 일어날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마이크 비클의 경우, 성령님의 영감에 관하여는 전혀 상관도 없이, 오직 사람들에 관한 예언들을 말하면서 공포와 두려움, 기대와 허황된 업적 등을 자랑하면서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견고히 하려는 의도에 뒷받침이 되는 이야기들만을 강조하였다. 마이크 비클이 바라보는 교회는 자신의 에언 앞에 모두 다 머리를 조아리는 집단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고, 그분의 가르침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 비클이 알려주는 ‘계시’와 ‘예언’에 따라서 좌우되는 사이비 왕국이다 그의 비젼과 꿈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의 영웅심과 엘리트주의에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4.  젊은이들을 사역의 중심에 두는 전략적 간교함
 IHOP에 몰려가는 한국 젊은이들을 염려하지 앟을 수 없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교회의 기둥이다. 그런데 아직 분별력이 없을 때에 헛된 것에 속아넘어가게 되면 참된 교회생활의 고난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사탄은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단의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는 거짓 기독교이자 헛된 가르침은 마이크 비클이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전략 가운데서 드러난다. 국제 기도의 집은 두 부류, 즉,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과 아주 발전이 느리고 평범한 기독신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적인 사역을 강조하고 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장래에 대한 환상과 망상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이크 비클이 주도하는 ‘운동’과의 관계성이다.  

 캔사스 “국제기도의 집”에 관계 된 예언자들은  “늦은 비 운동”과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에서 입증하려는 현상적인 것과 아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은 앞에서도 밝혔다. ‘늦은 비’와 오순절 성령의 세례라는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일부 정도를 벗어난 이단적인 예언운동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호감이 넘치는 신앙심을 부추기고 있다. IHOP '국제 기도의 집'에 있는 선지자들은 이들 젊은 세대가 일어나게 되어지면, 사도 행전에 나오는 기적보다 “10,000” 배 이상의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죽지도 않을 것이묘, 죽임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예수님이 처음 시작했다면, 이들 젊은이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자신의 육체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말의 충분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으로서 행동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Mike Bickle, “Glory and Dominion of Sonship, part 2: "But through His Word, He has given us a revelation of what He intends us to be; sons of God in the full sense of the word……God said that these people were to act as God.”
 
 이들의 교회관은 분파주의적인 엘리트주의다. 마이크 비클과 그의 선지자들은 그들만의 모임에 대한 정당성을 위해서 기성교회를 비판한다.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괴한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 교회가 성숙하지 못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교회가 나타나기 까지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이 땅위에 심었는데, 모든 남녀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알파 처음 아들이요, 여러분의 자녀들은 오메가 마지막 자녀들이다.
 마이크 비클은 한결같이 예수는 시작이요, 우리와 젊은이들의 세대가 마지막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는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그 일의 마지막이다” “"The Church is in no condition for the Lord to come today ... He's going to come for a church that is mature in righteousness... progressively going in this righteousness until you take on THE VERY DIVINE NATURE OF CHRIST HIMSELF and you begin to see Christ in the Church. Christ won't come for the church until you see Christ in the Church until the Church looks like Jesus. PAPA (God) planted Jesus, He sowed Him down here in this earth to have a whole nation of brothers and sisters that looked just like Jesus ... His Son was a ALPHA SON, your children are the OMEGA sons and daughters.”" [Mike Bickle interjects here, “"Jesus was the beginning, but our children and us, we're included in this ... we're the end of this thing.”" (quoted in Discernment newsletter)

  이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시작하신 분이며,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며, 세상의 알파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세상은 끝이 나며, 영적 전쟁도 끝이 난다. 그리스도가 없이 되는 일이란 없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하고, 우리 인간들이 마치는 일이란 무엇인가? 삼위일체 대한 이단 가운데 쉬운 용어로 ‘양태론’(modalism)이라고 알려진 것과 흡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로마에서 198년부터 220까지 살았던  사벨리우스 (Sabellius)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은 단 하나의 존재에 귀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H. D. McDonald, "Monarchianism," in New Dictionary of Theology, 441..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 (London: 1977). John M. Frame, The Doctrine of God (Phillipsburg: P & R, 2002), 689.

 결국 성자와 성부는 일시적인 양태에 불과하고,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영원하다. 그래서, 성부 단일신론(Monarchianism)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의 유니테러인파와 같다. 구약은 오직 성부 하나님만의 시대였고,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있었으며, 사도행전 이후로는 성령으로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Robert Letham, The Holy Trinity (Phillipsburg: P & R, 2004), 108.

 이런 양태론적인 구분은 ‘세대주의적 양태론’ (dispensational modalism) 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살아가는 시대이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관계가 없게 된다. 지금 우리 새대에는 예수는 없고, 마지막 세대이므로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은, 마이크 비클에게는, 기독론이 실종된 상태이다. 이것은 성부 유일신론 (Unitarianism)과도 관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알파 운동과 자신들의 오메가 사역을 주장하는 것은 로마서 8:19절을 완전히 곡해해서 인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고대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이 세상의 가장 마지막까지 가지는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만물의 절정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재림신앙에 대해서 강조하는 구절이다.

 마이크 비클이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예언 운동에는 하나님의 신성이나 계획은 대수롭지 않게 본다. 이처럼 사람들의 운동은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강조되어지고, 하나님의 신적인 계획과 그분의 통치를 변질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이단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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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수아 2011/04/02 [06:25] 수정 | 삭제
  •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많으나 사실은 위선자인 사람입니다. 마이크 비클이 바로 그런 사람인듯 하네요.. 분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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