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부활했다”

“예수는 부활했다”

크리스찬투데이 | 기사입력 2003/04/16 [00:00]

“예수는 부활했다”

“예수는 부활했다”

크리스찬투데이 | 입력 : 2003/04/16 [00:00]
채찍질 당하고∙십자가 못박히고∙창 찔려 죽을 수밖에
설사 살아났더라도 흉측한 몰골…사망이긴 승리와 무관
무덤 위치 누구나 확인 가능…여자 첫증인 진실 뒷받침
거짓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사람 없어…제자들 모두 순교
바울∙야고보의 회심 예수 부활 아니면 설명할 길 없어



예일대 출신의 탁월한 언론인으로서,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기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아주 냉소적이고,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무신론자 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어렵고도 거친 질문들을 준비해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학자들 13명과 직접 인터뷰했다. 그리고“예수는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인터뷰 내용이 바로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 두란노 역)란 책으로 출판됐다. 여기에 이 책의 제3부‘부활 연구’를 요약했다. 리 스트로벨은 윌로우크릭교회 구도자 예배의 설교목사가 됐으며, 지금은 새들백교회에서 구도자 사역과 함께 구도자 전도를 위한 책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예수 죽음의 증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속임수였는가?”아니라면 의학적 증거는 있는가. 공학 박사이자 내과 의사인 알렉산더 메드럴(Alexander Metherell) 박사는 의학적∙역사적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예수가 폐와 심장을 꿰뚫은 상처는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서 살아날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십자가에 달리기 전부터 예수는 심각한 상태였으며 무서운 채찍질로 몸에 심한 충격을 받은 후 였다. 로마의 태형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형벌로 알려져 있다.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된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는 날카로운 쇠 구슬이 박혀 있었다. 태형만 당하고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거기에 끝이 가늘고 뾰족한 대못으로 양 손목과 두 발에 못박았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오른쪽 폐와 심장을 꿰뚫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기절한 후 죽은 척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없다. 사형을 집행한 로마인들은 죄수 중 한명이라도 십자가에서 살아서 내려오면 자기들 목숨이 달아나는 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잔인한 정도로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처리했다. 설사 예수가 그 고문과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죽은 자나 다름없는 그 흉측한 몰골로, 결코 무덤을 뚫고 영광스럽게 승리했다는 전제를 가진 세계적인 운동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의 빈 무덤

“예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인가?”두 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부활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쓴 윌리엄 레인 크레그(William Lane Craig)는 부활절의 영원한 상징인 예수의 텅빈 무덤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놀랄만한 증거를 제시했다. 빈 무덤은 매우 초기의 자료인 마가복음과 고린도전서 15장의 신조에 그대로 기록되거나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그 사건과 기록 연대가 너무 가까워서 전설의 부산물이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텅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기사의 진실성을 한층 더 뒷받침해 준다. 1세기에는 여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었으므로,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굳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의 무덤 위치는 그리스도인, 유대교인, 로마인에게 모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의심이 들었다면 누구나 확인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덤에 예수의 시체가 있다고 반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로마 당국자나 유대교 지도자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그런 행동을 할 아무런 동기나 기회가 전혀 없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설은 심지어 오늘날 가장 회의적인 비평가조차도 믿지 않는 이야기다.

예수의 부활 후

“예수는 부활 후에 정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 가?”예수가 부활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증거는 그의 생애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어 신화로 수년간에 걸쳐서 점차로 발전된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부활 사건 연구가 게리 하버마스(Cary Habemas) 박사는“부활이야말로 매우 초기부터 초대교회가 선포한 중심적 메시지였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대 신조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심지어 바울은 1세기의 회의론자들에게 그들을 만나 보고 사건의 진실성 여부를 직접 판정해 보라고 도전하기까지 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매우 초기의 확증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복음서에도 부활 후 여러 차례의 목격담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영국의 신학자 마이클 그린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예수가 부활 후 나타난 것은 고대의 어떤 사건보다도 잘 증명되고 있다. …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 났는지에 대한 의심은 있을 수 없다.”

예수 부활의 근거

“부활을 뒷받침하는 다른 사실들은 없는가?”J.P.모어랜드(Moreland) 박사는 예수의 부활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상황적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 제자들은 부활이 일어났는지를 알만한 유일한 입장에 처해 있었고, 그들은 부활이 사실이라고 선포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째, 부활이 아니라면 바울과 야고보 같은 회의론자들이 회심하여 신앙을 위해 죽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

셋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몇 주 내에 수 천명의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수세기 동안 사회적 종교적으로 절대시했던 사회 관습마저 버린 채 그 분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매장 당할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넷째, 초대 교회 성례의식인 성만찬과 세례는 예수의 부활과 신성을 확증해 준다. 다섯째, 로마의 무지막지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교회가 출현한 사실은 모울(Moule)의 말대로“역사에 위대한 구멍, 즉 부활이라는 크기와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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